與텃밭 시의원 도전 野·무소속 3인, 비록 당선은 못했지만 희망을 봤다

- 형제복지원 비리 추적 박민성

- "값진 패배…새로운 시작 활력소"

- 영화 속 '국밥집 아들' 송병곤

- 지역구도 타파 의미있는 선전

"밝고 맑은 세상, 그날을 위해…또 다른 저 같은 이를 기대하며 저는 물러가야지요. 행복했습니다."

6·4지방선거 다음 날인 지난 5일 오후 권경업(62) 시인이 보내온 문자메시지 중 일부다. 지난 25년간 부산 어린이대공원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해온 그는 시의원에 출마했다. "지역을 위해 더 큰 봉사를 하겠다"는 포부였다.

멀리서 지원도 이어졌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트위터에 "지역을 위해 이 정도 일한 분이시면 무조건 강추!"라고 썼다. 허영만 화백은 직접 권 시인이 출마한 북구를 찾아 응원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국회의원과 안철수 공동대표, 영화배우 문성근 씨도 권 시인의 유세차를 탔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하지만 40.89%라는 높은 지지율로 새누리당의 아성을 위협했다.

정치의 '정' 자도 몰랐지만, 부산 정치지형에 새 바람을 불어넣은 후보들은 또 있다. 개표가 끝난 후 박민성(39) 사회복지연대 사무처장은 "진짜 열심히 했습니다"고 말했다. 박 사무처장은 시민사회단체의 추천을 받아 무소속으로 시의원에 도전장을 냈다. 그런데 '다른 일'로 더 바빴다. '복지 마피아' 형제복지원의 공무원 유착 비리(본지 지난 5월 15일 자 1·3면 등 보도)를 밝혀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몇 년간 공을 들인 결과물을 내놓고서야 선거를 준비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도 '큰 위기'를 겪었다. 얼굴 알리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40년간 멀쩡하던 맹장이 말썽을 일으켰다. 박 사무처장은 수술을 받고 며칠을 병원에 누워 있은 후에야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그의 선거운동은 또 다른 '복지운동'이었다. 지역의 소외된 이웃을 보살피는 게 선거운동이었다. 하지만 41.89%의 의미 있는 득표로 낙선. 그래도 그는 큰 선물을 얻었다. 박 사무처장은 "투표하고 나오던 한 어르신이 '니 후보 맞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공약이 좋아서 찍었데이'라고 말씀해주셨다"며 "이번 선거가 앞으로의 활동에 주춧돌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 '변호인' 속 돼지국밥집 아들의 실제 인물인 송병곤(55) 법무법인 부산 사무장도 시의원 선거에서 낙선했다. 송 사무장은 1981년 군사정권의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 피해자다. 당시 부산대 법대를 졸업하고 노동현장을 경험하기 위해 공장에 다니다 연행돼 60여 일간 감금·고문당했다.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변호사사무소 사무장으로 일했다.

송 사무장은 애초 출마에 뜻이 없었다. 출마 예상자 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자 숨어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 민주화 원로들의 삼고초려 끝에 출마를 결심했다. 원로들은 송 사무장의 상징성을 내세워 지역주의 구도를 깨려 했고, 송 사무장은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선거운동에 임했다. 송 사무장은 "홀가분하다. 그냥 한판 잘 놀았다고 생각하고 싶다"며 그동안의 고생을 털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