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고창권(오른쪽) 부산시장 후보가 27일 부산진구 삼성생명 앞에서 열린 고 염호석 삼성전자서비스 양산분회장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 세 시간가량 눈 붙이고 직접 운전
- 처음보다 지지율 올라 행복
- 지지 부탁 대신 진정성 전달 주력
- 학보사 인터뷰도 마다 안해
- '노조 탄압' 규탄 기자회견 참석
- 식사하며 당직자와 TV토론 분석
- 원전 직원에 폐로절차·비용 물어
- 양산 노동운동가 빈소도 방문

6·4지방선거 통합진보당 고창권 부산시장 후보가 귀가한 시간은 27일 새벽 2시30분께. 전날 밤부터 이어진 TV토론을 끝내고 선거대책본부에 잠시 들렀다가 돌아오니 '집 나온 지' 하루가 훌쩍 지났다. 세 시간쯤 눈을 붙였을까. 고 후보는 오전 6시께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시장 후보라고 해서 '특별 대우'는 없다. 직접 자신의 승용차에 시동을 건다. 오전 8시가 조금 안 된 시간, 졸린 눈을 비비며 도착한 곳은 한 방송사 라디오 스튜디오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순간 고 후보의 눈빛이 예리해지고, 허리가 꼿꼿이 섰다.

사실 이날은 몸보다는 '입'이 바쁜 날이다. 각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쏟아져 시간을 빼기가 쉽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고 후보는 행복하다. "(선거전 초반 지지율이 미미하다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언론이 다뤄주지 않더군요. 그런데 최근 시민께서 진보정당의 정책적 차별성을 좋게 봐주시고, 지지율이 크게 오르니까 여기저기서 인터뷰하자는 요청이 많이 들어옵니다. 좋은 일이죠. 저를 통해 노동자·서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고 후보가 인터뷰 때마다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말은 "노동자·서민"이다. 그는 이날도 내내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여느 후보들처럼 "지지를 부탁합니다" "꼭 찍어주세요" 등 표를 호소하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란한 선거운동 없이 그저 행동으로 진정성을 전달하는 데 주력했다. 모든 일정은 '노동자·서민'과 '시민 안전'에 맞춰졌고, 이를 위해 아예 '한 표도 없는' 경남으로까지 갔다.

오전 10시께 부산진구 범천동 삼성생명 건물 앞. 이미 부산지역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줄지어 있었다. 고 후보도 대열 맨 앞줄에 합류했다. 지난 17일 노동조합 탄압 등에 항의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양산분회장을 위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고 후보는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물론 피켓을 흔들며 삼성과 경찰을 규탄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시민·노동단체 회원들은 저마다 고 후보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제 TV토론 최고였어요. 정말 시원했습니다." 곳곳에서 응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한 방송사 기자가 고 후보의 팔을 잡아당겼다. 또 인터뷰 요청이다. 즉석에서 인터뷰가 진행됐고, 시민과 인사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일부 젊은 여성은 "어제 TV에서 봤다"며 마치 연예인을 본 듯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 또 다른 방송사와의 인터뷰를 위해 급히 선거캠프로 이동했다. 오전 11시께 캠프로 들어서자 비록 몇 안 되는 당직자들이지만 "고창권! 고창권!"을 연호하며 힘을 북돋워줬다. 전날 TV토론이 성공적이었다는 자체 평가에 잔뜩 고무된 모습이었다.

오전 11시30분께.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방송사 취재팀이 오지 않았다. "한 시간쯤 늦겠다"는 전화 연락이 왔다. 이희종 대변인이 외쳤다. "그럼 점심부터 먹고 합시다."

선거캠프 인근 조그마한 식당.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스스로 "잡식성"이라며 "먹을 수 있는 건 어떤 것도 가리지 않는다"는 고 후보지만, 그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같이 한 그릇 하시죠. 이 집 김치찌개랑 돼지고기 두루치기가 아주 맛있습니다." 고 후보가 취재팀에게도 식사를 권했다.

식사 시간 캠프 당직자들은 TV토론에 대한 분석과 선거 전략 개발에 열을 올렸다. 이들에게 자투리 시간이란 없었다.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을 비운 고 후보는 다시 캠프로 향해 언론 인터뷰를 소화했다.

잠시 쉴 틈도 없이 '먼 길'에 올랐다. 이날 가장 무게중심을 둔 일정, 바로 고리원자력본부 방문을 위해서였다. 장거리인 만큼 '특별히' 수행팀원이 대신 운전대를 잡았다. 통합진보당 시장 후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특혜'인 셈이다. 고 후보의 차 안엔 서류 뭉치도, 갈아입을 옷도, 특별한 그 무엇도 없었다. 딱히 눈에 띄는 건 분홍색 목베개. 고 후보는 "어제 여대생 당원이 선물해줬다"고 자랑했다.

오후 2시께 고리원전에 닿았다. 간단한 환담을 마친 후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인 고리 1호기로 향했다. 고 후보는 고리 1호기 방문 이유에 대해 "다른 후보들은 세몰이 유세로 바쁘지만, 저는 시민 안전을 위협하는 고리1호기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고 했다. 또 "수명을 다한 고리 1호기를 즉각 폐로하고, 비상 방제구역을 현 8~10㎞에서 최소 30㎞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후보는 고리원전 직원들에게 폐로와 관련한 구체적 절차와 비용 등을 자세히 묻기도 했다.곧바로 '노동자·서민 행보'가 계속됐다. 그는 '부산시장' 후보지만 경남 양산으로 발길을 돌렸다. 오후 5시께 삼성전자서비스 염 분회장의 빈소를 찾았다.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고 후보는 부산대학보사와의 인터뷰를 끝으로 이날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다시 선대본부 회의를 거쳐 또 자정이 다 돼서야 해운대구 반송동 집으로 향했다.

고 후보는 "하루 세 시간가량밖에 잠을 자지 못하는 강행군이지만, 선거운동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아쉽다"며 "더 많은 노동자·서민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당하게 완주하겠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 말없이 후원하는 아내·두 아들 고맙다

■ 高 후보 가족 이야기

- 생업·군복무·고2…선거운동 못해

고창권 후보가 27일 고리원자력본부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여대생 당원으로부터 선물받은 목베개를 자랑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보, 이게 얼마 만에 쓰는 편지인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내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고 결심했어…. 부디 내 결정을 믿고 이해해줘."

통합진보당 고창권 부산시장 후보는 후보등록 마감일 하루 전인 지난 15일 아내(49)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 아내는 평소 가장 의지하는 대상이자 신뢰하는 친구지만, 남편의 '부산시장 도전'을 지지하지 않았다. 고 후보는 "20년 전 연애 시절을 생각하며 '뜨거운 편지'를 썼다"며 "다 쓰고 읽어 보니 제가 다 눈물이 났다"고 멋쩍어했다. 다음 날 고 후보는 후보로 정식 등록했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내는 말없이 잘 다려진 여름용 양복을 고 후보에게 내밀었다. 고 후보는 감동했다. 꽤 더운 날씨였지만, 고 후보는 그동안 봄·가을용 두꺼운 양복을 입고 선거운동을 했었다.

고 후보는 인제대 의대 졸업 후 부산·경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면서 한 살 연상인 아내를 만났다. 부산대 의대를 졸업한 아내는 집 근처 해운대구 반송동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다. 비록 '생업' 때문에 남편의 선거운동을 전혀 도와주지 않지만, 고 후보는 "아내는 제가 버티는 가장 큰 힘"이라고 말한다.

아내는 물론 두 아들도 고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하지 않는다. 여느 후보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다 이유가 있다. 큰아들(21)은 군 복무 중이고, 작은아들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다.

하지만 고 후보에게 가족만큼 소중한 건 없다. "고등학생 아들의 친구들이 이제 제가 부산시장 후보인 걸 다 안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이 살짝 얘기해주더군요. '힘내시라'는 말보다, '좋은 시장이 되시라'는 격려보다 훨씬 고마웠습니다.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소신을 지키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고창권 후보 27일 일정 오전 8시 라디오 방송 출연 오전 10시 삼성전자서비스 염호석 열사 기자회견 오전 10시30분 언론사 거리 인터뷰 오전 11시30분 언론사 인터뷰 오후 2시 고리원자력본부 방문 오후 5시 양산 염호석 열사 빈소 방문 오후 8시 대학신문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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