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라노]내년부터 ‘먹는 임신 중지약’ 처방 가능해진다

박주현 기자 qkrwngus30@kookje.co.kr  |  입력 : 2026-09-28 08:56:21
‘미페프리스톤’ 성분의 임신 중지 약물. 로이터 연합뉴스
‘먹는 임신 중지약’이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도입됩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형법상 낙태죄 처벌 조항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뒤로 7년째 입법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우선 임신 중지 약물이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임신 중지 약물을 도입·관리해 음성적 약물 유통에 따른 여성 안전과 건강권 저해 요소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성평등가족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1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된 제14회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임신 중지 약물 도입 방안을 보고했습니다. 복지부는 임신 중지 약물 도입 초기 2년간 의료기관 내 의사의 직접 처방·조제를 원칙으로 관리하되, 부작용과 안전성 검토 등을 거쳐 점진적으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임신·출산이 여성의 삶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인데 그동안 제도적 미비로 안전하게 의료체계에 접근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정식으로 임신 중지 약물 도입방안을 발표한 만큼 국가 의료체계 아래에서 안전하게 임신 중지가 이뤄지고, 이에 따라 이를 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상황에 처한 여성들의 부담도 경감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경구형 임신 중지 약물이 ‘미프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정부가 도입하려는 약물은 정확히 ‘미프지미소’입니다. 미프진은 임신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호르몬을 차단하는 ‘미페프리스톤’ 성분으로만 구성된 약입니다. 미프지미소는 미페프리스톤과 자궁 수축을 유도하는 ‘미소프로스톨’ 성분이 함께 있는 의약품입니다. 두 성분은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 필수 의약품 목록에 올랐습니다. WHO는 “임신 중지 의료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은 모성사망률을 낮추고 임부와 여아의 존엄성을 보호해 준다”고 설명했습니다.

경구용 임신 중지 약물은 이미 1988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2000년 미국, 2023년 일본 등에서 도입돼 2024년 기준 101개국에서 사용을 허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들여오는 시도는 있었습니다. 미프지미소의 국내 판권을 가진 현대약품은 2021년부터 식약처에 세 차례 품목 허가를 신청했지만 법적 근거가 없어 진척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이 먹는 임신 중지약 도입에 힘을 실으면서 급물살을 탔습니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14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낙태죄, 낙태 허용 범위 논쟁이 안 끝나 이걸 허용하지 않다 보니 현실적으로 (약이) 필요한 여성들이 해외 직구로 복용해 사고가 난다”면서 “법 밖에 (이들을) 방치하면 정부는 책임을 모면하겠지만 국민은 위험에 빠진다”고 말했습니다. 현대약품은 식약처에 임신 63일(9주) 이내에 사용하는 조건으로 미프지미소 품목 허가를 신청했고, 현재 관련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산부인과계는 정책 방향은 공감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 중지약은 불완전유산·과다출혈 등 합병증 발생 시 후속 수술적 처치와 응급의료 연계가 필요한 의약품”이라며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도입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것이므로 환자 안전을 담보하지 않는 도입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단체는 “의료인의 법적 보호가 담보돼야 한다”며 국회의 입법을 촉구했습니다.

인공 임신 중지 약물이 도입된다고 끝난 건 아닙니다. 법률상 임신 중지에 대해 규정돼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보고서를 통해 “미프진 품목허용 자체는 식약처의 권한으로 결정이 가능하지만 임신 중지 허용 기간, 허용 사유, 미성년자 동의 조건, 의료인의 거부권 인정 여부, 건강보험 적용 등은 정책적·입법적인 영역”이라며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각계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