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대상 유성훈(경기 서현고 1년)

국수 한 그릇

시골에 아직 홍두깨가 있는지 모르겠다. 굵은 원통형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홍두깨는 오랫동안 할머니의 손에 길이 들어 모난 구석 하나 없이 반질거렸고, 밖에 놔둔 탓에 얼었다 녹으며 터진 허연 속살이 거뭇하게 때가 탄 겉면 사이로 비쳤다. 아버지는 시골에만 오면 온 동네를 뒤집고 다니던 나와 동생에게 얌전히 굴지 않으면 밤에 홍두깨가 도깨비로 변해 잡아간다고 으름장을 놓으셨지만, 당신보다 역사가 오래된 물건을 함부로 다루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시골에서 홍두깨를 만질 수 있는 사람은 할머니뿐이었다. 명절이나 제삿날처럼, 친척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면 할머니께선 외벽에 비스듬히 세워뒀던 홍두깨를 안마루로 들여와 마른 행주로 쌓인 먼지를 닦아내셨다. 그리곤 대야 가득 밀가루를 담았다. 생 밀가루 특유의 풀 비린내가 난다 싶으면 나의 어린 사촌들은 커다란 달력에서 지난 달 부분 몇 장을 찢어다 마룻바닥에 깔고 옹기종기 둘러앉곤 했다. 밀가루 반죽을 되지도, 질지도 않게 빚어내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은 뼈가 만져질 정도로 얇아 부서질 듯 위태로웠지만 자식이 배곯을까 하는 걱정에 땀방울을 흘리시며 펄펄 날리던 가루가 큼직한 쌀알처럼 반지르르하게 될 때 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자식걱정, 손주걱정으로 밤을 지세우시고, "밥은 묵었노", "잠은 잘 자제?"가 인사말인 우리 할머니는 당신 손만큼이나 갈라지고 색이 바랜 홍두깨를 단단히 그러쥐시고는 국수 반죽에 몸무게를 실어 홍두깨로 밀고 당기면서 얇게 펴진 반죽이 안마루 덮을 때, 오늘 그래도 자식과 손주들 끼니를 당신 손으로 챙겨 먹였으니 자신의 몫은 다했다 웃으시는 그런 분이셨다. 국수반죽을 여름 이불 개듯 그걸 길게 접고 칼로 썰어 면 다발을 수북하게 뽑아내고 아귀가 맞지 않는 솥뚜껑 사이로 올라온 김과 나무와 풀잎 타는 연기가 섞여 희뿌연 구름기둥을 만드는 동안, 어른들은 보릿고개 내내 질리게 먹던 걸 아직도 먹는다며 불붙은 장작마냥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할머니의 표 국수 면발은 차례를 지내고 남은 탕국에 말아먹기도 하고 이도저도 없으면 국물 없이 헛제삿 밥을 양념하는 파간장에 비벼 먹었다. 열 명이 넘는 친척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은 이른 저녁상에선 다들 왠지 숙연해져서, 수저 부딪히는 소리와 면 삼키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시골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해가 빨리 떨어졌다. 그 시간의 속도만큼 할머니와의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가족들이 모두 탈 때쯤이면 자줏빛 하늘의 서편에서 저녁별이 다른 별들을 이끌고 오고 있었다. 차 시동이 요란하게 울리면 시골에 남는 할머니가 차창을 두어 번 두드리곤 아쉬운 얼굴로 조심해서 돌아가라 일렀고, 또 언제 보냐며 눈물을 찔금 흘리셨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선 남색 천에 밀가루를 흩뿌려놓은 것 같은 밤하늘 아래서 논두렁을 타고 시골 마을을 떠났다.

시간이 흘러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시골집은 해를 거듭할수록 황량해졌다. 이젠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거라곤 여전히 텃밭에서 피어나는 철모르는 들꽃과 여전히 또렷하게 빛나는 밤하늘의 별자리뿐이다. 하지만 꺼먼 재가 묻은 채 무너져가는 담벼락 아래에 피어난 민들레 꽃을 볼 때면, 그때 그곳에 가득했던 할머니의 밀가루 내음과 밥은 묵었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웅-웅 소리 내며 내 가슴 언저리를 허하게 만든다. 자신의 몸보다 큰 홍두께와 밀가루 자루를 지고 구불구불 언덕진 길을 올라오는 할머니, 뒷짐을 지고 무심한 듯 걸어가는 할머니, 가만히 앉아 햇볕을 쬐는 할머니는 이 자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이건 꽃이고, 나무고, 나비고, 바람이여. 옥상에 올라가면 우리 동네가 아름다워 보이기도 허지만 꼭 올라가서 봐야만 이쁜 것은 아니여. 그건 꽃도 어여쁘고, 나무도 어여쁘고 나비도 어여쁘기 때문인 것이라...너무 공부 열심히 하지 말어..."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우리 할머니의 밀가루 냄새가 그리운 날이다.

중등부 대상 윤등은 (부산 광안중 2년)

내 가슴 속 희망의 태극기

초등학교 때 가족끼리 서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처음 간 서울 여행이었는데 여행기간에 광복절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사람들만큼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이 태극기였다. 서울시청에는 아주 거대한 태극기가 걸려있었다. 어린 나의 눈에는 무척 신기하였다. 그래서 동생이랑 나는 태극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가 엄마아빠 손에 끌려 서울 시청 안으로 들어갔다. 서울시청에서는 광복절을 맞이하여 태극기 그리기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랑 나는 자리에 앉아 작은 고사리 손으로 태극기를 색칠했다. 안에 담긴 뜻도 모르고 색칠 한 태극기였다. '건', '곤', '감', '리', '음', '양' 태극기의 흰색 바탕은 우리의 민족성을, 태극문양은 음과 양의 조화를, 4괘는 하늘과 땅,물과 불을 의미하며 많은 뜻을 담고있다. 태극기는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1882년의 태극기와 다른 형태로 계속 태극기가 나왔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지만 한 번도 찾아보려 알아보려고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하여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태극기의 정확한 제작 방법이 알려지지 않아 모양이 다 달랐던 것이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다음날 서대문 형무소로 갔다. 가는 길 내내 웃고 떠들고 장난치던 동생과 나는 이상하게 서대문 형무소 앞에 도착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조용해졌다. 어린 나에게도 서대문 형무소에 슬픔이 전해졌던 것 같다.나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숙연한 마음으로 서대문 형무소를 관람했다. 뭔가 오싹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혼자서는 구경할 수가 없어 아빠 손을 꼭 쥐고 구경했다. 서대문 형무소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그 태극기도 서울시청 것만큼 컸지만 신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극기를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그 태극기는 서울시청에서 보았던 태극기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니까 더 마음이 이상했다. 그때 어린 나에게 전해졌던 느낌은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아프고 시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들에게 뛰어가서 내가 커서 지금보다 더 힘이 세진다면 일본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알려주며 코를 납작하게 해주고 싶다고 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서대문 형무소의 태극기를 보고 우리나라의 아픔과 서러움을 느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보면 나는 태극기와 인연이 많았던 것 같다. 유치원 다닐 때 엄마 따라 집 근처 도서관을 갔었다. 그때 사서 선생님께서 내 손에 사탕을 쥐어 주시며 삼행시를 한번 써 보라고 했었다. 제헌절과 개천절, 광복절 등의 삼행시 주제가 있었다. 조그만 손으로 삐뚤빼뚤 못생긴 글씨로 개천절을 적었다. 지금도 생각이 나면서 웃음이 나온다. 일주일 뒤에 다시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사서 선생님께서 태극기를 손에 쥐어 주셨다. 선생님이 삼행시 잘 적어서 주는 것이라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래서 엄마에게 뛰어가서 자랑을 했었다.

평상시에 즐겨보던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작년에 LA특집으로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발자취를 따라갔다. LA에서 대한민국까지 넘어온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이야기는 내가 미처 알지 못하고 있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안창호선생님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설명해보라 하면 벙어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아니면 아예 안창호 선생을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마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설명해보라고 하면 나도 남들과 다를 게 없이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내 자신이 무척이나 창피하면서 '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나 역시도 남들과 다를 것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이 방송을 보았던 것 같다. TV를 통해 듣고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지고 숙연해질 때가 많았다. 그리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이신 이혜련 여사님께서 직접 만드신 태극기를 보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바로 그 태극기였다. 이혜련 여사께서 만드신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독립을 미국에 알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많이 낡고 닳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우리 조국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태극기에는 우리나라 독립 운동가들의 노력과 열정, 피와 땀이 담겨 있었다. 프로그램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이 있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대단하시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부인이자 독립 운동가이신 이혜련 여사도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을 믿고 낯선 타국인 미국으로 함께 와서 독립 운동과 더불어 독립 자금을 모으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시지 않으시고 자식들의 교육까지 하신 정말 대단한 어머니이시다.

일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이 죽음을 각오하며 태극기를 흔들었고 그 결과로 우리의 조국에는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잊지 못할 역사이다.

작년 2016년 8월 6일부터 8월 22일까지 브라질 리우에서 올림픽이 열렸다. 우리나라는 206개 참가국 중 52번째로 개막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태극기를 휘날리며 등장할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대한민국이 아닌 브라질에서 흔들리는 태극기는 내 기억 속에 오래오래 남을 것이다. 우리나라 올림픽 출전 선수들은 모두 한손에는 태극기를 들고 왼쪽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고 나온 우리 선수들의 태극기는 그 어느 나라의 국기와 비교하여도 빛났다. 우리나라선수들은 금메달을 펜싱. 사격. 골프 1개, 태권도 2개, 양궁 4개를 땄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와 골프의 박인비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을 보았을 때 벌떡 일어나서 박수라도 치고 싶었다. 그리고 태극기가 올라가며 애국가가 경기장을 가득 울릴 때 온 몸에 전율이 퍼졌다. 하지만 금메달 받은 선수뿐이 아닌 우리나라를 위해 은메달과 동메달 그리고 올림픽의 출전한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와 포옹을 해주고 싶다. 꼴등이 있어야 1등이 있는 것이고 2등이 있어야 1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선수들 모두가 정말 자랑스럽다! 특히 마라톤에서 태극기를 단 사명감과 아버지와의 약속을 위해 안 좋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완주를 해 131위라는 기록을 낸 손명준 선수가 다른 누구보다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선수가 있다는 것이 정말 자랑스럽다.

그리고 얼마 전에 신문을 보며 우연히 읽게 된 기사였는데 비인기종목인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도 이 기사를 읽기 전에는 아이스하키를 잘 알고 있지도 않았고 관심조차 없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며 우리나라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이 무척이나 존경스러웠고 멋져보였다. 백지선 감독은 2014년 7월에 부임하자마자 선수들에게 커다란 태극기 사진과 '코리안 내셔널 팀'이라 적힌 노트를 나누어줬다. 거기 노트 첫줄에는 '우리는 가족이다. 서로를 위해 싸운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한다. 한마디를 개인이 아닌 태극마크의 '원팀'으로 뛴다는 희생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나라의 아이스하키 팀은 조금씩 성장해 나아갔다. 지금은 덩치가 큰 유럽 팀과 북미 팀마저도 당황할 정도라고 한다. 무엇보다 아이스하키 대표 선수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백지선 감독님의 'Win All Battle(모든 전투에서 승리하라)'는 모토 덕분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가슴에 단 태극기와 리우에서 울린 애국가는 선수들의 땀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이루어 낸 값비싼 성과이고 대한민국의 비인기종목이었던 아이스하키 팀은 패배의식에서 '우리는 국가대표'라는 자긍심을 키우게 해준 태극기는 우리나라의 크나큰 자부심이다.

나의 가슴에는 희망의 태극기가 달려있다. 나는 가슴에 희망의 태극기를 달고 우리나라를 빛낼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아마 소설가로서의 길을 걷다보며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을 것이고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오랜 꿈이고 꼭 이루고 싶은 목표이기 때문에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펜싱의 박상영 선수처럼 상대 선수가 한 점만 더 내면 질수도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다는 신념 하나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든 것처럼, 골프의 박인비 선수처럼 부상으로 인한 극도로 부진한 성적으로 올림픽 출천을 망설이다가 태극기의 사명감으로 금메달을 따낸 것처럼, 마라톤의 손명준 선수처럼 아버지와 자신과의 약속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정신력으로 박수를 받은 것처럼, 도산 안창호 선생의 진심으로 자기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비로소 남을 사랑하고 이롭게 할 수 있다는 애기애타의 정신으로 독립을 위해 앞장 선 것처럼 나도 소설가로서 성공하여 지금 내 나이와 같은 미래의 15살 소년. 소녀의 가슴에도 희망의 태극기를 달아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작가라는 꿈을 키웠을 때부터 생각한 나의 소원이자 목표가 있다.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처럼 맨부커 상이나 아니면 우리나라의 뛰어난 작가님들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노벨 문학상을 타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번이나 고민하고 수십 번 고치고 다시 쓰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의 꿈을 위하여, 그리고 어릴 때 태극기를 알리겠다는 나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노력해보고 싶다.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의 마음 속 간직하고 있는 태극기는 각자의 꿈과 미래, 희망을 담고 있다. 태극기는 우리의 희망이다.

초등부 대상 박수은(서울 행현초 6년)

수형번호 371번의 탄식

우중충한 하늘에선 때 아닌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봄을 알리는 비였으면 좋으련만..... 나라를 빼앗긴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인지 빗방울은 나의 마음까지 슬프게 적신다. 내 가족과 내 민족과 내 나라를 빼앗아간 일제에 항거하는 대한독립만세 소리만이 머리 속에 맴돌 뿐이다. 지난 1919년 4월 1일 아우내독립만세운동 당시 일제의 총칼에 땅과 하늘이, 심지어 부모님의 모습까지 붉게 물들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부모님의 죽음과 맞바꾼 대한독립만세의 우렁찬 함성 소리다. 이 세상에 철저하게 홀로 남겨진 내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대한독립의 염원 뿐이다.

이곳 서대문형무소의 밤은 너무나도 어둡고 차다. 하지만 진정 나를 괴롭히는 건 일제의 모진 고문도, 썩은 감자 하나로 겨우 허기를 달래는 배고픔도 아니다. 순간의 총소리에 땅과 하나가 되신 부모님의 마지막 눈빛에 내 가슴이 너무나도 무겁다. 일제 승냥이들이 나의 육신을 처절하게 짓밟지만, 그럴수록 나의 정신은 더욱 대한독립에 귀결된다. 그래서 이곳에서 내가 더욱 대한독립만세를 목터져라 외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더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야 하는 것일까? 악에 받친 만세소리가 아닌 진정으로 기쁜 만세를 외치고 싶다.

내 눈과 귀로 태극기의 물결과 만세의 함성을 확인하고 싶지만, 얼마나 내 몸이 버틸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사투 속에 뜻을 같이 했던 몇 동료들이 전향했다는 소식에 나 역시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형무소 밖으로 나갈 저들이 진심에서 전향한 것이 아니기를. 저들이 나를 대신하여 밖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쳐주길 기대할 뿐이다. 어머니, 아버지 혹시 하늘에서 보고 계신가요? 저 여기서 계속 이렇게 버텨야 하나요? 아니면 잠시 전향한 후 밖에 나가 다시 새로운 만세를 준비해야 할까요?

길고도 긴 고뇌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 형무소 안에서 끝까지 대한독립만세의 염원을 불사르기로 했지요. 며칠 전 꿈속에서 뵈었던 부모님께서 제 선택을 자랑스러워 하셨지요. 제가 결심한 바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한 길임을 이제는 스스로 확신합니다. 아니요.

창밖의 앙상한 저 나무는 아직도 꽃과 잎을 피울 줄 모릅니다. 어서 따뜻한 봄이 왔으면..... 봄은 내가 잠든 후에야 올 것 같다는 불길한 생각도 듭니다. 오늘 밤 꿈 속에서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싶습니다. 배가 너무 아파 마른눈물에 콧시울만 찡합니다. 눈이 스르르 감기고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그래도 이 땅에 언젠가 봄은 찾아오겠지요.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겠으나, 나라를 잃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