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남자 역무원이 스토킹하던 20대 동료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면서 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신변보호가 허술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살인 용의자는 스토킹 등 혐의로 불구속재판을 받던 중 1심 선고를 앞두고 범행을 저질렀다.

신당역 역무원이 해당 살인사건이 발생한 여자화장실 입구 등 역사 내에 설치된 CCTV 화면을 모니터링하는 모습. 연합뉴스

● 범행 전 두 차례 고소 당해

서울 중부경찰서는 15일 서울교통공사 역무원 전모(31)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전 씨는 전날 오후 9시께 신당역에서 여자 화장실을 순찰하던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에 따르면 전 씨는 6호선 구산역에서 일회용 승차권을 이용해 지하철을 타고 신당역으로 이동해 1시간 넘게 화장실 앞에서 피해자를 기다리다 범행을 저질렀다. 흉기에 찔린 피해자는 화장실에 있는 비상벨로 도움을 요청했다. 이어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끝내 사망했다.

피해자와 입사 동기인 전 씨는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피해자를 협박한 혐의로 두 차례 피해자로부터 고소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0월 7일 피해자가 처음 고소하자 경찰은 이튿날 전 씨를 긴급체포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에도 스토킹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올해 1월 27일 전 씨를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재차 고소했다. 경찰은 2차 고소 때는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이날 서울서부지법이 전 씨에 대한 선고를 할 예정이었으나 전 씨 범행으로 선고가 연기됐다.

● 112 시스템 등록 한 달만 적용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가해자를 고소한 직후를 제외하면 별다른 신변보호를 받지 못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지난해 신변보호 대상 여성이나 그 가족을 살해한 김병찬(35)·이석준(25) 사건을 계기로 여러 개선책이 나왔으나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나온다.

피살된 역무원은 지난해 10월 8일부터 1개월 동안 ‘신변보호 112시스템 등록’ 조치를 받았다. 같은 달 7일 피해자가 전 씨를 성폭력범죄 처벌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다음 날부터다. 휴대전화 번호를 112신고 시스템에 등록해 신고가 접수되면 경찰이 더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긴급응급조치(주거지 100ｍ 내 접근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금지를 명령할 수 있는 단계)나 스마트워치 지급은 당시 피해자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적용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112시스템 등록 기간 연장도 없었다. 경찰이 한 달간 피해자의 위험도를 체크했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고 피해자도 연장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추가 피해를 신고한 적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피해자가 안전조치를 원하지 않는데 경찰이 강제할 순 없다”며 “위험도가 높으면 조처를 할 것을 권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 유족 측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어지느냐.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매뉴얼을 마련해서 재발을 줄여야 한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2년간 스토킹 피해 상담 배 증가

한편 지난 2년간 스토킹 피해로 전화상담을 신청한 인원이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여성가족부의 2021년 양성평등정책 연차보고서에 수록된 여성긴급전화 1366센터 상담현황을 보면 스토킹이 단독 상담유형으로 추출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스토킹 상담 건수는 약 2.1배 늘었다. 연도별로는 2019년 1294건에서 2020년 10175건으로 늘더니 지난해 2710건이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관계 부처에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긴급 지시를 내렸다. 총리실은 “한 총리는 어제 발생한 30대 남성 스토커의 여성 역무원 살해사건과 관련해 강한 우려와 유감을 표하고, 신속한 원인 파악과 함께 재발방지책 마련을 관계부처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일반시민이 더는 이와 같은 불행한 사건으로 희생되지 않도록 관계부처는 철저히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강력한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특히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 효과적이고 단호한 대응 방안을 적극 검토하라”며 “경찰과 검찰 등 관계기관은 범죄 예방 활동과 치안 확보 노력에 총력을 기울여 달라”고 지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