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세상읽기] 세상을 재미있게 경험하는 매뉴얼 /조갑룡

  • 조갑룡 교육인
  •  |   입력 : 2022-02-20 19:54:49
  •  |   본지 22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고흐의 그림 12장으로 된 2018년도 달력을 5년째 사용하고 있다. 휘몰아치는 사이프러스와 삶과 죽음의 밀밭에서 꿈틀거림을 찾아내는 고흐의 탁월한 시선 때문이다.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요일의 순서만 바꾸어 프린트하여 붙이면 된다. 

올해는 금요일이 맨 앞이다. 재미있고 실용적인 아이디어라고 한 마디씩 건넨다. 배부용으로 또 다른 달력을 만들었다. ‘창백한 푸른 별 지구’ 등 우주 관련 사진 12장을 A4용지로 출력하여 꾸몄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일을 세로로 배열했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싶어서다. 

달력 19부를 지인들에게 보냈다. ‘왜 이리 보기 힘들게 만들었느냐?’고 시큰둥인데 초등학교 1학년 손녀는 ‘와, 할아버지는 창의적이다!’란다. 나의 조금 다른 이야기가 손녀에게 인정을 받았다. 돈키호테가 된 기분, 뻔하지 않은 시선이 만들어 낸 즐거움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창의성을 ‘새로운 땅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라 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 모든 이야기는 수천 번씩 반복된 것일 뿐, 창의성은 어떻게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하느냐의 문제이다.

영화 ‘관상’은 ‘계유정난’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반응이 격렬하게 일어날 것으로 예견되는 천재관상가의 이야기를 입혀 새로운 재미를 만들었다. 주연 송강호의 역할은 관객의 흥미를 끌 토핑으로 채택되었을 뿐이다. 김종서와 수양대군 두 집안 틴에이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넣어도 된다. 토핑이 곧 창의성이다.

학창시절, 음악 시간은 발성 연습으로 시작하였다. ‘도 시 라 솔 파 미 레 도’, 우리는 맨날 아무 생각 없이 불렀다. 

그런데 한 아이는 달랐다. ‘선생님, 이렇게 하면 안 되나요? 도 시 라 솔 파 미 레 도…’. 헨델 작곡으로 알려진 ‘기쁘다 구주 오셨네’의 첫 부분과 일치한다(이 아이와 헨델은 전혀 관계가 없다. 내가 생각해 낸 픽션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것으로 되었다. 새로운 시선이 변화와 재미를 만들었다.

창의성은 지능과 동의어일까? 계산문제 하나를 풀어보자. 5×3=28이라고 할 때 9×1=? 답이 나오는지 모르겠다. 810이다. 이때 작용하는 메커니즘을 ‘지능’이라 한다. 지능은 기존 지식과 절차를 빠르게 습득하는 논리적인 능력이다. 논리는 우리들을 A에서 B로 이동시킨다.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한 창의력은 B뿐만 아니라 어디든지 데려다준다. 창의성은 ‘2+3=5’라는 논리를 추구하지 않는다. ‘5=1+4, 2+3, 3+2,…1.1+3.9,…’와 같이 숱한 가능성을 잉태한다. 지능이 논리적이라면 창의성은 감성적이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으로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술적 감성과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 글쓰기가 있고.

글쓰기는 인간의 창의성을 빛나게 하는 설계도와 같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글을 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필사부터 해보자. 이문열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3번 베꼈고, 조정래는 소설가가 되려는 아들에게 ‘태백산맥’을 10번 정도는 써봐야 이야기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필사는 저자가 의도한 정신적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 보는 것이며, 투입한 물리적 흔적들을 모방하는 것이다. 손으로 펜을 움직이는 가운데 수많은 생각과 상상이 일어날 것이고 이것들이 원동력이 되어 더 재미있는 결과를 내는 삶의 방식을 터득할 수 있다.

필자가 필사를 했던 김훈의 소설 ‘칼의 노래’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름만 전하고 이야기는 전하지 않는 그 많은 넋이 이제 편안하기를 바란다.’ 먹먹해진다. 이야기가 전하지 않다니! 뻔한 얘기들은 언제나 밖에서 서성이기 때문이다. 나의 호기심을 실행에 옮길 때 특별한 이야기가 된다. 세상을 재미있게 경험하는 매뉴얼이 된다. 올해 만든 달력도 그중의 하나다. 세상사에 대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웃들이 창창(唱唱)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산교대역 ‘35년 터줏대감’ 한양프라자 역사 속으로…
  2. 2부산시 “가덕, 중추공항화 건의”
  3. 3가덕신공항 공법 3월에 결론낸다
  4. 4치질 수술, 고무줄 대신 ‘바나나클립’으로 치핵 묶어 출혈 잡았다
  5. 5통학로 정비 빛나는 협업…해운대 운봉초 5개월 만에 안전 찾았다
  6. 6수술대 오른 ‘실업급여’…현금 지원 대폭 줄인다
  7. 7‘TK신공항’ 놀란 부산 여권 “가덕신공항 조기개항 총력전”
  8. 8스마트나라요양병원- 노인성 질환·암 양한방 협진 치료…낙동강 뷰에 호텔급 편의시설
  9. 9어르신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마세요
  10. 10“일본 등 견학, 자존심 건 투자…요양병원 패러다임 바꿀 것”
  1. 1가덕신공항 공법 3월에 결론낸다
  2. 2‘TK신공항’ 놀란 부산 여권 “가덕신공항 조기개항 총력전”
  3. 3‘신공항 치킨게임’ 부산 국힘·부산시 규탄 목소리
  4. 4與전대 최고위원 레이스도 후끈
  5. 5대통령실 방통위 감찰 이어 공영방송 이사진 줄소환 예고...타깃은?
  6. 6유승민 국민의힘 대표 불출마…“폭정 막을 것”
  7. 7"또 다시 검찰과 전쟁?"...민주당 추가 검찰개혁 논의 시동
  8. 8여야 120명 ‘초당적 정치개혁 모임’ 출범…선거제 개편 첫발
  9. 9李 “오라니 또 간다, 대선패자의 대가” 檢 탄압 프레임 부각
  10. 10윤 대통령 부부, 오늘 캄보디아 소년 로타 만난다
  1. 13월 말부터 규제지 다주택자 LTV 최대 30% 허용..."효과는 글쎄..."
  2. 2국적선원 8년새 12% 줄어…산학관 해법 찾는다
  3. 3삼성전자 반도체 겨우 적자 면해 '어닝 쇼크', 주가도 약세
  4. 4기아의 니로EV, ‘가장 안전한 차’로 뽑혀
  5. 5지난해 12월 부산지역 주택매매 거래량, 전년 동기 비해 ‘반토막’
  6. 6금리·물가·환율 ‘3고’…시중은행 연체율 꿈틀
  7. 7해수부, 청년 대상으로 어선 임대사업 시행
  8. 8상위 1% 가구 주택 수 평균 5채…공시가 합계 34억 원
  9. 9미생물로 에어컨 냄새 없앤다…현대차, '디 올 뉴 코나'에 적용된 신기술 와우
  10. 101인 가구 청년 절반 이상 “불규칙한 식사가 가장 큰 골칫거리”
  1. 1부산교대역 ‘35년 터줏대감’ 한양프라자 역사 속으로…
  2. 2부산시 “가덕, 중추공항화 건의”
  3. 3통학로 정비 빛나는 협업…해운대 운봉초 5개월 만에 안전 찾았다
  4. 4수술대 오른 ‘실업급여’…현금 지원 대폭 줄인다
  5. 5어르신들, 키오스크 앞에서 당황마세요
  6. 6“김해 의생명산업 특화, 국내 4대 거점 도약 포부”
  7. 7“에듀테크 활용…부산형 교육사다리 만들 것”
  8. 8국민연금 보험료율 15%로 인상? 복지부 “정부안 아니다”
  9. 9한파 지난 부산 울산 경남 오전 -8~0도....낮 최고 9~11도
  10. 10오늘의 날씨- 2023년 1월 31일
  1. 1황성빈 140% 인상, 한동희 ‘옵션’ 계약
  2. 2김민석 “포지션 상관없이 1군 목표”…이태연 “누구도 못 칠 강속구 만들 것”
  3. 3쇼트트랙 안현수 국내 복귀 무산
  4. 4조코비치 호주오픈 10번째 우승…테니스 세계 1위 탈환
  5. 5“김민재 환상적” 적장 모리뉴도 엄지척
  6. 6아픈손가락 윤성빈, 롯데는 포기 안했다
  7. 7푸틴 훈장 안현수 국내 복귀 실패..."이중국적 해명 뒤 연금 일시불 들통"
  8. 8또 신기록…‘빙속여제’ 김민선 폭풍 질주
  9. 943초 만에 ‘쾅’ 이재성 2경기 연속 벼락골
  10. 10의심받던 SON, 골로 증명한 클래스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