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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109> 칠언절구로 가을날 집의 표정을 읊은 권우의 시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나그네의 옷을 채우네

  • 조해훈 시인
  •  |   입력 : 2021-09-28 19:59:39
  •  |   본지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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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대는 푸른빛을 나누어 책상에 스며들게 하고(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나그네의 옷을 채우네.(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낙엽 또한 바람 기운을 탈줄 알아(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 온 뜰에 비바람 소리 내며 절로 날아다니네.(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매헌(梅軒) 권우(權遇·1363~1419)의 ‘가을(秋日)’이란 시로, ‘국조시산(國朝詩刪)’ 권2에 수록돼 있다.

낙엽이 떨어지고 있는 가을이다. 대나무는 여전히 푸른빛을 띠고 있다. 이 대나무의 푸른빛이 서재에 스며든다. 서재는 그만큼 푸른 정신이 들앉아 있는 공간이다. 국화는 시인에게 맑은 향을 보낸다. 시인의 정신이 그만큼 맑고 향기롭다. 시인이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인지 짐작이 된다. 뜰은 또 어떤가. 낙엽이 바람에 쓸려 다니며 비바람 소리를 낸다. 짧은 칠언절구이지만 시인은 가을날의 집 표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점차 세상은 가을빛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국화가 곳곳에 보인다. 길가 가게 앞에도 색색의 국화 화분이 늘어섰다. 화려한 듯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고 맑은 꽃이다. 선비들이 이때쯤이면 국화 화분을 방안에 들여놓고 감상한 것도 이 꽃의 그런 성징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목압서사가 있는 화개골에는 여름 동안 빨간색을 자랑한 꽃무릇이 시들고 있다. 대신 국화가 나무 사이에서, 잡초 틈에서 조용하게 꽃망울을 터뜨린다.

한시는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진다. 위 시를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몇 번 읽어보시라. 마치 시인의 마음속에 깊이 들어간 것처럼, 그 사람이 환히 보이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위 시가 만고에 길이 빛날 작품이라는 건 아니다.

엊저녁 자리를 함께한 어른께서 ‘한시를 읽다 보면 상상력이 넓어짐을 알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필자도 공감한다. 짧은 몇 글자 속에 어쩌면 그렇게도 시인의 모든 것을 다 녹여놓을 수 있는지 늘 감탄한다. 필자가 수년 전부터 환갑 때 한시집(漢詩集)을 엮으려고 생각했다. 막상 환갑 때 분류한 시를 읽다 보니 부끄러워 구석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시간만 흐르고 있다. 국화가 예쁘게 피는 때여서 관련된 시를 골라봤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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