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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73> 과음한 뒷날의 소소한 일상 그린 이정주의 시

햇차를 혼자 끓여 마셔 숙취를 푸네(自斟新茗解頭酲·자짐신명해두정)

  • 조해훈 시인
  •  |   입력 : 2021-05-18 18:54:31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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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햇살 비치는 발에 제비가 재잘대고(朝旭簾頭燕語輕·조욱렴두연어경) / 햇차를 혼자 끓여 마셔 숙취를 푸네.(自斟新茗解頭酲·자짐신명해두정) / 졸음 겨운 게으른 종 보니 이맛살이 찌푸려지고(渴眠倦僕鬚眉卷·갈면권복수미권)/ 책 안 읽는 어리석은 아이 때문에 입이 실룩거린다.(懶讀癡兒口舌生·나독치아구설생) / 먼 마을에 구름 걷히자 산봉우리 파랗게 이어지고(遠落脫雲連嶂碧·원락탈운장벽) / 작은 뜰에 비 지나고 나자 모래가 하얗게 젖었네.(小庭經雨濕沙明·소정경우습사명)/ 집안일을 가지고 와서 시끄럽게 하지 말기를(休將家事來相聒·휴장가사래상괄) / 앞 개울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려네.(擬向前溪聽水聲·의향전계청수성)

19세기 시인 이정주(李廷柱)의 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早起)’로, 그의 시집인 ‘몽관시고(夢觀詩稿)’에 실려있다. 그는 문과에 합격하여 벼슬한 문사가 아니라 산학(算學)으로 벼슬한 기술직 출신의 중인 시인이다.

세상사는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하인은 말을 안 듣고 아이는 도통 책을 읽으려 들지 않는다. 업무 스트레스도 많으니 답답한 마음에 전날 과음한 모양이다. 다행히 햇차가 있어 스스로 끓여 마시지만 머리가 맑아지지 않는다. 마음이 답답한 건 여전하다. 그런 답답함을 풀어주는 게 자연이다. 먼 마을에 구름이 걷혀 산봉우리가 파랗게 이어지는 걸 보니 마음이 조금 풀린다. 한바탕 비가 퍼붓다 그치자 작은 뜰이 깨끗해졌다. 마음이 한결 깔끔해진다. 개울가에 나가 물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더욱 맑아진다. 이럴 때는 복잡한 집안일로 시끄럽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계절은 지금쯤인 것 같다. 필자가 은거하는 하동 화개골 목압마을에도 오늘 오전까지 사흘간 비가 내려 풍경이 시의 내용과 흡사하다. 차의 본향이라는 화개골의 햇차 수확도 마무리 단계다. 차는 숙취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시인이 햇차를 마셔도 술이 쉽사리 깨지 않은 걸 보니 엄청 많이 마신 것 같다. 이 시를 쓴 이정주는 추사 김정희에게 ‘세한도’를 선물받은 이상적의 친척이다. 계절도 맞고 우리가 살면서 겪는 소소한 일상을 그린 점이 재미있어 이 시를 골라봤다.

시인·고전인문학자·목압서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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