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영도는 또 하나의 세계다

목지수 싸이트브랜딩 대표·매거진 ‘집앞목욕탕’ 발행인

  • 목지수 싸이트브랜딩 대표·매거진 ‘집앞목욕탕’ 발행인
  •  |   입력 : 2026-05-17 19:36:31
  •  |   본지 21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 영도 봉래동 물양장 창고군과 바지선 풍경.
부산에 뿌리내린 수많은 장소 중, 영도는 유독 ‘계(界)’를 떠올리게 한다. 해운대나 광안리, 전포가 흐름과 이동을 상징하는 ‘류(流)’의 장소라면, 영도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여 스스로의 경계선을 또렷하게 그어온 섬이다. ‘계’는 본래 구분 짓고 나누며 때로 고립시킨다. 그러나 그 고립은 역설적으로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힘을 획득하기도 한다. 외부의 유행이 섬 안으로 밀려오는 속도를 늦추고, 변화의 방향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단숨에 결정하지 않으며, 사람과 공간이 함께 오래도록 숨을 고를 수 있게 한다. 그 덕분에 사람과 공간은 보다 오랜 호흡으로 서로를 닮아간다. 영도는 바로 그 느린 시간의 레이어가 겹겹이 쌓여 만들어낸 견고한 ‘세계(世界)’다.

한때 영도는 조선 산업의 거대한 심장이었다. 새벽을 깨우던 쇳소리, 용접 불빛, 일터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발걸음이 섬 전체의 맥박을 만들었다. 산업은 쇠락했고 사람들도 하나둘 떠났지만, 그 시대의 표정은 아직 영도의 골격 속에 남아 있다. 오래된 주택, 비탈진 골목, 소금기 어린 바람과 녹슨 선박의 표면까지. 영도에서는 지금도 과거가 현재의 피부와 공존하고 있다. 그래서 이곳을 걷고 있으면 쇠퇴의 흔적이라기보다 오래 버텨온 삶의 물성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10년 남짓 사이, 영도의 변화가 반가운 까닭도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봉래동 물양장의 낡고 거친 창고군들은 영도의 새로운 시그니처로 자리 잡고 있다. 무명일기, 모모스커피, 스페이스원지 같은 공간들은 물양장이 가진 날 것의 풍경을 훼손하거나 가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거친 질감을 배경 삼아 자신들의 이야기를 얹으며 조화를 이룬다. 수많은 여행자가 부산역에 내리자마자 영도 봉래동으로 직행하는 이유는, 서울이나 다른 도시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이 ‘시간의 밀도’를 체감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요즘 부산을 찾는 외국인 여행자들의 움직임도 놀랍다. 한국관광데이터랩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전국에서 외국인 관광객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영도구 봉래2동이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28% 증가한 수치다. 부산에서 가장 빠르게 인구가 줄어들던 섬이, 이제는 가장 빠르게 외국인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은 여러 생각을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이것이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나 자극적인 마케팅의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제 사람들은 점점 더 비슷해지는 도시의 표정보다 그 시간을 견딘 장소만이 지닐 수 있는 아름다움에 끌린다.

이런 흐름 속에서 모모스커피가 발간하는 로컬 매거진 ‘BUSAN MOMOS’ 최근호는 영도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을 건넨다. 그 안에는 모모스커피가 영도에 뿌리내리기까지의 낯설고도 지난한 여정이 담겨 있다. 오래된 물양장 창고가 로스터리이자 커피바로 다시 숨을 쉬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히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일을 넘어 부산 산업화의 시간을 품은 장소를 새롭게 읽어내는 일에 가깝다. 왜 이들에게 영도여야 했는지, 왜 이곳에서 커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싶었는지가 조금 더 또렷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한 잔의 커피를 내어놓는 일을 넘어, 영도와 천천히 호흡을 맞추며 이 동네의 풍경 속에 스며들고자 하는 마음 또한 읽힌다. 그리고 그 마음은, 어쩌면 영도 자체가 오래전부터 품어온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영도는 여전히 쉽게 열리지 않는 섬이다. 단번에 이해되지 않고, 서두르는 사람에게는 끝내 전부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섬의 속도에 몸을 맡기는 사람에게는 조금씩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다. 그리고 지금, 그 섬이 세계인의 발길을 조용히 불러들이고 있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부산국제영화제 11년 만에 ‘관객 20만’ 재돌파
  4. 4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5. 5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6. 6[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7. 7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8. 8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9. 9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10. 10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1. 1[정가 인&아웃] 지역현안 해결사 이헌승 국힘 부산 국회의원, 국제신문 회생에도 팔 걷어
  2. 2北,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2종 시험발사(종합)
  3. 3‘신천지 與 입당 정황’ 친청계 반발…“김 대표, 조사 과정 제대로 밝혀라”(종합)
  4. 4北 "전날 동해서 2종 잠수함발사 전략순항미사일 시험발사"
  5. 5신임 靑 비서실장에 임광현 국세청장(종합)
  6. 6김민석 격주 부산행 PK 민심잡기…부마항쟁 기념식 찾는다
  7. 7이 대통령 "부마항쟁 헌법 조문화, 이제는 실천할 때"
  8. 8김민석, 강훈식 서울시장 후보론에 “가능성 열려있다”
  9. 9李 대통령 지지율, 2주 전보다 소폭 오른 44%…부정 평가 49%
  10. 10김지용 “정치검사 1호는 尹”…과거 행적 놓고 與 집안싸움(종합)
  1. 1부산TP 수장 중기부 승인…신임 기관장들 내주 취임
  2. 27.5% 폭락 ‘녹아내린 코스피’…7000서 7일 만에 5500으로(종합)
  3. 3누리호 탄 군집위성, 발사 14시간 만에 첫 지구 촬영 성공
  4. 4‘신뢰 시그널’ 없는 증시…외인 이달만 18조 투매
  5. 5모건스탠리 “고물가 고착화 위험에 한은 내달 금리 올릴 듯”
  6. 640돌 수산무역협회도 부산시대 연다
  7. 7AI 투자 회의론 고개…글로벌 반도체주 ‘먹구름’
  8. 8부산항에 석유 보세구역…북극항로 선박연료 생산·공급
  9. 9커피향 가득한 미래 작가들 ‘사랑방’
  10. 10주가지수- 2026년 10월 15일
  1. 1부캉이가 남기고 갈 ‘북항 활성화·기후 대응’ 숙제
  2. 2세입자 보증금 안 준 前 금정구의원…추가 피해 확산
  3. 3구·군 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논란, 부산 5곳 폐지 결정…4곳은 “고수”
  4. 4민주항쟁사 한 폭에 담은 작가 “부마정신 헌법에”
  5. 5아파서도, 부적응도 아니다…고교 자퇴 71% ‘내신 세탁용’
  6. 6“장림항 레저보트 철수명령 정당” 대법 확정
  7. 7오늘의 날씨- 2026년 10월 16일
  8. 8예고 임용강사·학원장 겸직, 전국서 부산예고 가장 높아
  9. 9거짓자백 받았나…法, 17년전 ‘창원 택시기사 살인’ 재심청구 인용
  10. 10불법정치자금 수수 혐의, 배재정 전 의원 실형 구형
  1. 1김도영의 KIA냐, 오스틴의 LG냐
  2. 2득점은 킹, 리바운드는 롱…KCC 살릴 ‘믿을맨’ 찾았다
  3. 3자금 숨통 틔웠다…LIV골프 살아날까
  4. 4프로야구 역대급 흥행에도 쪼그라든 ‘거인 팬심’
  5. 5[뭐라노] 롯데, 이젠 성찰할 때
  6. 6인종차별 당한 엄지성…英 경찰 수사
  7. 7거인 3년 연속 7위…레이예스·한동희는 날았다
  8. 8황성빈은 첫 도루왕…끝까지 뜨거웠던 타이틀 경쟁
  9. 9한화, 새 사령탑에 류지현…3년 20억원
  10. 103년 無가을로 계약 만료…김태형 감독 운명은?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원자력 청출어람, 스승을 가르치다
국제칼럼 [전체보기]
사라지는 것, 귀 기울일 것
열린 사회와 그 적들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은정이라는 이름
다시 영화의 시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B형 간염 ‘바이러스 수치’에 ‘급여’ 맞춰야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초대 중수청장, 내편 네편 아닌 국민편에 서라
지자체, 현수막 법 준수하고 실태부터 파악해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다민족 사회
부캉이가 북항에 던진 질문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금가락지가 땅에 떨어진 형국, 곡전재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거울 속의 외계인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