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게 잠들 수 없는 날들이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불안과 혼란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시민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힘으로 극악무도의 폭력은 분명히 막아낼 테지만, 믿음만으로는 쉽게 안정이 찾아지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시민이 불안과 분노의 나날들을 보내야 했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거리로 나왔다. 또 다시 어려운 시절이 시작되었다.

계엄 이후로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그날도 밤중에 여러 번 깨었고, 다시 잠들기 어려울 것 같아 휴대전화를 켠 뒤 뉴스를 보던 차였다. 뉴스창 맨 아래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기념 강의에 대한 기사가 하나 올라왔다. 아, 오늘이구나, 노벨상위원회 유튜브로 접속했다. 호명된 한강 작가가 앞으로 나와 ‘빛과 실’이라는 제목을 시작으로 강의문을 낭독했다. 첫 단어부터 마지막 인사까지. 여리고 차분하지만,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강인한 힘이 담긴 글과 목소리에 목 놓아 울었다. 시대의 어둠에 짓눌렸던 모든 것이 위로받고 치유받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살아갈 의지가 다시 생겼다. 그래,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한강 작가의 강의는 평생 간직한 질문에 대한 것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작가가 품어온 질문은 깊고 아름다웠다.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 신뢰를 잃은 나는 어떻게 세계를 껴안을 수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은 인간으로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지금 벌어진 계엄 사태뿐만 아니라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지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들은 너무나 많았다. 이 땅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삶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고, 수많은 노동자와 장애인의 삶에는 여전히 위험과 고통이 너무나 가까이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기후위기는 가장 약한 자들의 삶부터 파괴하고 있다. 얼마나 더 부르짖어야, 얼마나 더 많은 존재가 위험해져야,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이 사라져야 이 세계는 변할 수 있는가. 그런 자조와 절망이 거대한 쓰나미처럼 덮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때가 있었다.

그러나 한강 작가가, 혹은 무수히 많은 문학 작품은 나에게 다시 말을 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것,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 그러니까 아무리 극악무도한 폭력이 있더라도 그것에 저항하고 반대해 끝끝내 살아 있게 하는 것이 인간이다.

나는 인간이고 싶고, 살아 있고 싶다. 가슴이 뛰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가 뚫고 가야 할 거대한 암흑 끝에 어떤 희망의 빛이 있을지 상상했다. 그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아 만들어야 할 정의의 모습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전쟁의 공포에 휩싸이지 않는 세상,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청소년들이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존경받고 작지만 위대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그런 세상은 가능하다. 아름다움의 힘을 믿고, 사랑의 힘을 믿고, 꿈을 꾸며 그 꿈을 살기 위해 생을 걸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에서는, 반드시 가능하다.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마쳤다.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고, 이 행성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시점으로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이런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닙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입니다.”

세상을 떠났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존엄한 목소리 모두가 문학이다.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통과 작별하지 않는 사람들의 삶 또한 문학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와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말과 글과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며, 생의 기운으로 가득한 세계를 꿈꾸기를 포기하지 않겠다. 끝끝내 인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