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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난장] 국감장의 ‘검은 백조’

정치인들 결정 내릴 때 책임 생각하는지 의문

말과 행동 다르면 불신, 자리 걸맞은 모습 필요

  • 국제신문
  •  |   입력 : 2022-10-06 19:53:48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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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사회 구성원의 무책임한 태도가 얼마나 큰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전 세계를 뒤흔든 금융위기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서 비롯됐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채무를 갚을 능력이 작은 이들, 즉 비우량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 대출을 가리킨다. 신용도가 높은 사람은 이미 대출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은행은 새로운 고객을 발굴해야 했다. 이때 은행은 기존 우량 고객보다는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떨어지는 비우량 고객, 즉 서브프라임 고객을 주목했다.

은행 입장에서는 상환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라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는 집을 사두기만 하면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다. 집을 사기에 돈이 부족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집값이 계속 오르는 걸 지켜보며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믿고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

은행은 그 빚문서들로 다양한 파생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들 파생상품의 뿌리에는 집이라는 확실한 담보가 있었기 때문에 안전성도 확보된다고 여겨졌다. 이후에는 파생상품으로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드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수익성은 늘어났고, 위험성은 줄어들었다. 아니, 그런 것처럼 보였다. 모두가 행복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2006년 무렵부터 사람들은 집값에 거품이 끼어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이어서 집을 팔아도 빚을 갚기 어렵다는 불안감이 확산했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자 순식간에 집값 거품이 꺼지기 시작했고, 그 집을 담보로 잡은 파생상품의 가치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그 과정에서 몇몇 대형 은행은 파산에 이르렀다.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레바논계 미국인 경제학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가 ‘검은 백조’ 이론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백조의 색깔이 희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1790년 영국의 박물학자 존 레이섬이 호주에서 검은색 백조를 실제로 발견했다. 이후 ‘검은 백조’는 ‘상식에 반하는 불가능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탈레브는 ‘사회 시스템의 불확실성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일어나는 상황’을 ‘검은 백조’에 비유했다.

이후 탈레브는 ‘검은 백조’에 대한 대비책으로 ‘스킨 인 더 게임’을 제시했다. 이를 직역하면 ‘도박에 건 살점’으로,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안토니오가 저당으로 건 자신의 살점 1파운드에서 유래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는 자신의 살점을 내거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는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런 리스크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의사 결정에 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요즘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뉴스에서는 국민을 대표하는 이들이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사를 불러내어 위엄있는 모습으로 호통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런 소위 ‘높으신 분들’이 사람들의 삶을 좌우하는 중요한 판단과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과연 어떤 위험과 책임을 감당하는지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컨대 적잖은 정치인이 자기 자녀들은 해외의 사립학교와 명문대에 보내놓고, 국감장에 교육기관의 책임자를 불러내어 근엄하게 훈계한다. 나는 그들이 우리나라 교육의 미래에 대해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을지 의심스럽다. 설사 그들이 주장한 교육 정책이 잘못된 길로 가게 돼도, 그들의 자녀는 영향을 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 가족은 해외에 거주하면서, 입으로는 강하고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말하는 정치인도 그렇다. 정말로 전쟁의 위험 없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자신이 있다면 왜 그들의 가족은 해외에 있는가. 그들의 정치적 결정이 가져올 결과에 정작 그들의 가족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벌인 일의 결과가 잘못되더라도 내 가족은 다치지 않게 하겠다’는 것 외에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정치인의 백 마디 말보다, 그들에게 가장 소중한 가족이 어디 있는지가 그들의 진실성을 파악하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되는 이유다.

권리와 의무는 함께 간다. 행동과 책임도 함께 간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만약 권리와 행동만 취하고 의무와 책임은 회피한다면,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 스스로 자신의 자리에 걸맞은 위험과 책임을 감당하기로 한다면 이제까지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보던 사람들마저 마음을 돌릴 것이다.

결국엔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다. 말과 실제가 다르면 신뢰가 깨질 것이고, 행동에 책임이 따른다면 신뢰도 따를 것이다. 어쩌면 ‘검은 백조’는 금융위기 같은 사회 현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 호수에 사는 그 무엇인지도 모른다.

신승건 외과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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