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다시 처음에 꾸었던 꿈으로 돌아가 보자. 애초 잡았던 이상과 목표를 생각해 보자. 부산오페라하우스를 지어 잘 운영하면 시민과 세계인, 그리고 예술가에게 어떤 혜택과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지 거듭 찬찬히 또 따져보자. 이걸 놓치면, 오페라하우스를 둘러싼 논의는 더 큰 혼동·위험·비효율의 덫에 걸린다. 그 꿈이란 이런 것이었다. 이는 큰 그림, 큰 틀과 같은 말이다.
첫째 오페라하우스 건물 하나 달랑 새로 짓는 데서 끝나면 절대로 안 된다. 서울이나 외국의 큰 공연단체가 와서 ‘대관 공연’만 한 뒤 출연료를 담아서 떠나고 다시 오기를 반복하는 극장이 되면 안 된다. 엄청난 운영비가 드는 오페라하우스의 활용도가 떨어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런 구조가 고착하면 부산의 예술기획 역량이 파괴되는 점이 더 큰 이유다. 기획 역량이 파괴되면 지역 예술 생태계는 더 쪼그라들고 연약해진다.
둘째 오페라하우스는 우리 지역에서 우리 지역의 힘으로 관련 예술 콘텐츠가 생산·유통·재창조되는 거점 구실을 해야 한다. 건물 하나 덜렁 새로 짓는 것으로 끝나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 거점이 생겨서 제구실을 하면 지역의 연관 예술 분야가 살아날 수 있다. 오페라·오케스트라·합창·춤·미술·의상·무대·기술·분장·비평·전공·동호인·산업·관광·일거리·일자리 등이다. 오페라하우스 건립이라는 큰 그림 속에는 이런 연관 요소와 확장성에 관한 전략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단순히 오페라 또는 음악 장르의 일에 그치지 않는다.
셋째 공공성·전문성·경영 요소의 조화다. 민간 또는 시장에서 이런 일을 도맡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므로 공공성의 틀 안에서 전문성을 보장하되 경영·행정의 안정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은 특히 오페라하우스 초기 단계에 아주 중요할 일일 수밖에 없다.
오페하하우스의 현재 상황을 따지고 방향을 가늠하면서 길을 찾으려면, 우선은 대략 이런 요소를 살피면 될 것으로 보았다. 부산시 담당 부서를 찾아가 이런 내용을 놓고 질의하고 대화를 나눠보았다. 이야기를 나눈 뒤 내린 판단은 부산시가 위의 세 가지 사항을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큰 틀을 짜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세밀한 점에서는 여전히 검토하고 손볼 대목이 적지 않고 더욱 폭넓게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기환 부산시 문화체육국장은 “부산오페라하우스 운영 주체 선정을 위한 용역 등이 아직 진행 중인데 조만간 마무리되면 이를 바탕으로 추석 뒤 여러 예술인단체를 만나 간담회를 열고 다시 의견을 들을 예정”이라며 여러 방안이 아직 확정된 단계가 아님을 전제했다. 오페라하우스는 북항재개발사업지 안의 해양문화지구에 대극장(1800석)과 소극장(300석)을 총사업비 3050억 원을 들여 짓고 2024년 10월께 개관한다는 프로젝트다.
현안 가운데 하나는 콘텐츠 개발 영역의 ‘시즌 단원 제도 도입’이다. 오케스트라나 합창, 춤 등에서 오디션을 바탕으로 비상임 단원을 수십 명 뽑아 일정 기간(오페라하우스가 개관하면 약 10개월 단위) 연습과 공연을 지속하는 방식이다. 이들은 장기간 연속해서 지원할 수 있고 오페라하우스 공연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 자기만의 활동을 펼칠 수도 있다. 부산시는 여기에 ‘전문 아카데미’를 결합한다. 시 관계자는 “예컨대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같은 기관을 떠올려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KAFA는 뛰어난 교육 프로그램과 현장 활동 기회 제공을 바탕으로 우수한 영화 인재를 길러 한국영화 중흥을 이끌었다. 오페라하우스의 ‘시즌 단원 제도+예술 아카데미’ 결합 구상은 부산 예술 현장에 일자리보다는 ‘일거리’를 제공하는 전략인데, 지금 부산에 필요한 것이 이런 접근법이다. 만약 이런 시스템이 아니라 특정 음악단체가 오페라하우스에 상주하게 해 공연을 도맡게 하는 방식을 쓴다면, 현재 부산 상황에서는 만만찮은 일련의 부작용에 노출될 것이다. 시즌 단원 제도+예술 아카데미 방식은 새 국면을 열 수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새로운 예술 흐름의 거점으로 만들 필요에 대한 부산시의 대응은 ‘제작 극장화’이다. 수월성 높은 외부 단체 대관 공연도 유치하면서 동시에 장기간 이어서 공연할 수 있는 ‘레퍼토리 작품’들을 스스로 만드는 구조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는 시즌 단원 제도+예술 아카데미 시스템과 긴밀히 연결되면서 여러 장르 공연을 여러 형태로 실험하는 ‘블랙박스 극장’ 활성화로 뒷받침한다.
운영 주체 선정과 관련해서는 민간(전문가)의 독립성을 보장하되 부산시의 책임성·공공성을 높이면서 개관 초기 안정된 운영을 지원하고 경영 관점에서도 효과를 높이는 방안을 모색한다고 시는 밝혔다. 논의해야 할 사항은 여전히 많지만, 이런 큰 그림은 부산 예술 혁신과 도약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라고 판단한다.
조봉권 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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