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새로운 트렌드가 ‘남자는 애교, 여자는 박력’이라 했던가. 우리 집에서 귀여움과 뜬금없는 애교를 담당하고 있는 아들은 시도 때도 없이 손을 꽉 잡아달라고 한다. 올해 중학교 1학년인 녀석의 행동이 퍽 귀여워 땀이 삐질삐질 나는 한여름에도 녀석의 요청에 못 이긴 척 손아귀에 힘을 잔뜩 주고 최선을 다해 잡아준다. 아마도 아이가 자라면서 잔소리가 늘어나는 대신 내 눈에 가득했던 사랑과 스킨십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리라. 본능으로 느낀 아이가 수시로 부모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행동이라고 본다.

신체적 접촉과 사랑이라는 감정의 연관성은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졌다. 얼마 전 황당한 일본 예능을 접했다. 처음 만난 남녀가 30분 동안 다섯 번의 키스를 1분씩 반복하는 실험이었다. 처음엔 어색해하다가 점차 연인처럼 행동하더니 결국 둘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들은 키스를 통해 사랑의 호르몬을 분비한 것으로 생각된다. 안정감을 느낄 때 분비되며 항우울제로도 쓰이는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으로 잘 알려졌지만, 사랑의 호르몬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랑 호르몬’이라고 불리는 ‘옥시토신(oxytocin)’은 신체적 접촉으로 자극받기 때문에 ‘포옹 호르몬’이라고도 불린다. 옥시토신은 진통 효과와 면역력을 향상시키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도 막아준다.

박경리 작가의 ‘그해 여름’이라는 시에, ‘손 흔들며 작별하고 수술실에 들어갔었던 그해 여름, 눈을 떴을 때 하루 사이 세계지도같이 기미가 쓴 딸의 얼굴이 보였다’는 구절이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극적인’ 요소다. 이러한 사랑을 뇌 과학으로 설명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지만, 인간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여성이 출산하면 뇌 구조가 변한다고 한다. 아기를 낳은 여성의 뇌에서 특정 영역의 대뇌피질이 줄어든다. 특히,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전두엽 영역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 전두엽에는 옥시토신 수용체가 많이 분포하고 있어 엄마와 아기 간의 유대감을 높여준다. 뇌의 이런 변화는 2년 가까이 유지된다. 어쩌면 출산 전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아버지의 비극이며, 늙어서도 아버지는 ‘어려운’ 존재로 남는 생물학적 배경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피부세포는 대략 60만 개 이상의 감각 수용체를 지녔다. 이 수용체들을 통해 부드러운 손길이 닿았을 때 신경조직인 ‘C-촉각신경’이 활성화된다. 이 ‘좋은 느낌’은 척수와 뇌의 시상을 거쳐 시상하부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옥시토신을 만든다. 옥시토신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심장 박동은 느려지고 코르티솔의 감소로 불같은 화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스킨십은 충분히 검증된 고도의 생물학적 현상이다. 사실 우리 뇌는 발생학적으로 피부, 그리고 신경계와 매우 가깝다. 모두 같은 장소인 ‘외배엽’에서 형성된다. 배아가 3주째가 되면 피부에는 수많은 감각 수용체가 만들어져서 신경계를 통해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촉각이 뇌를 자극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옥스퍼드 대학 연구팀이 피검사를 받는 아기의 뇌를 관찰했더니 바늘로 찌르는 정도의 고통이 확인되었다. 이때 아기들을 아주 부드러운 만짐으로 토닥거렸더니 고통이 40%나 줄어들었다. 부드러운 손길은 시간과 돈이 들지 않는 아주 좋은 스트레스 치료법임이 확인된 것이다.

인간의 심오함을 호르몬 하나로 설명하기란 역부족이다. 하지만 복잡한 뇌의 활동을 화학 물질의 발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호르몬은 우리를 단순하게 행동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나는 아들 녀석이 손을 잡아달라고 하면 ‘사랑의 호르몬이 필요하구나’ 싶어서 매번 정성 들여 잡아줄 생각이다. 누구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면 사랑의 호르몬이 더 많이 분비되도록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백 마디 말보다 따뜻한 포옹 한 번과 스킨십이 마음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할 때가 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특히 미운 사람을 말없이 한 번 안아주면 어떨까. 인내력이 필요하긴 하겠다.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