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과 함께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은 절친한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시 ‘인 메모리엄’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신은 진실로 사랑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그리고 사랑이 창조의 마지막 법이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자연은 이빨과 발톱이 피로 물들고,/ 계곡에서는 인간의 신조를 아랑곳하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테니슨은 자연이 참혹한 생존경쟁과 약육강식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데 대해 이처럼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신의 사랑으로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자신의 믿음과 모순되는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깊은 탄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연은 사랑이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동양의 위대한 고전인 노자(老子)의 ‘도덕경’에 의하면 ‘천지불인(天地不仁)’, 즉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고 한다. 자연에는 인간의 관점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랑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물리법칙에 따라 운행될 뿐이니 증오 또한 없다. 서양의 현대 철학을 연 니체 역시 “우주는 완전하지도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다. 또한 이러한 것들 중 어느 것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갖고 있는 어떠한 미학적 그리고 도덕적 판단도 우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 ‘잔인하게’ 먹는 것은 생존하기 위한 행위일 뿐 그 어디에도 사랑과 미움을 찾아볼 수 없다. 초식동물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 나온 애니메이션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서 늘 자신(‘잎싹’)과 어린 청둥오리 ‘초록이’의 목숨을 노리는 족제비를 향해 “왜 언제나 우리를 괴롭히는가?” 물었을 때 족제비는 “나는 배가 고프고 그때 너희들이 보였을 뿐이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사랑이 없는 것은 먹이사슬에서만이 아니다. 지구는 복잡한 상호작용을 통해 스스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수많은 생명체들은 그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따금 강력한 태풍이 정성껏 가꾸어놓은 과수원을 초토화시켜 한 해 농사를 망쳐놓거나 홍수로 가옥이 파괴되고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야속한 하늘이지만 인간의 마음일 뿐이다. 자연은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지금 세계는 인류가 초래한 온난화로 인해 멸종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5억 년 동안에 지구는 5차례나 걸쳐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생물들에 대해 대멸종의 역사를 만들었다. 2억 5000만 년 전 고생대를 끝낸 페름기 말의 멸종에서는 95% 이상의 종들이, 6천 5000만 년 전 중생대를 끝낸 백악기 말의 운석 충돌에 의한 멸종에서는 지구를 지배했던 공룡과 70% 가까운 종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이 역시 주어진 조건에서 물리 법칙에 의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지구의 활동일 뿐이었다.

현재 여섯 번째 멸종을 맞이하고 있는 가운데 기후난민 등 피해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사랑도 증오도 없는 자연이지만 인간 사회는 가난한 약자들이 늘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이미 저주의 땅이 되어 버린 데다 기후변화로 더욱 혹독한 시련의 땅이 된 아프리카의 사람들, 해수면 상승으로 나라 전체를 잃게 된 투발루 군도 사람들에게 야속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자신들과 무관하게 이 상황을 초래한 인간들일 것이다.

테니슨이 그토록 사랑의 실종을 얘기하며 처절하게 탄식해야 할 것은 사자가 이빨과 발톱을 피로 물들이며 사슴을 잡아먹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니라 거대하게 몰려오는 멸종의 파도 앞에 견뎌내기 힘든 사람들과 생명들을 위해 우리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이다. 사랑이 없는 자연에서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신조일 것이다. 자연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여섯 번째 멸종 이후에도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건강한 생태계를 회복시킬 것이다. 단 그곳에 인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유상균 지순협대안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