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자전거 길 종주 여행에 나섰다. 삼례역에서 내려 전주천 자전거 길을 타고, 이튿날 임실군 강진면으로 들어섰다. 식당 아주머니 말로는 오늘 날씨가 최고로 더워 고생 좀 하겠단다. 덥거나 말거나. 강변 따라 쭉 타고 가면 마음만큼은 시원하겠지.

섬진강 자전거 길은 표지판은 물론 길바닥도 잘 관리해놓은 편이라 자전거 타기에 좋았다. 이 정도면 더위에 아랑곳없이 페달을 밟기 마련. 자전거 길이라는 이름조차 없었던 15년 전, 자전거로 전국을 돌아다녔을 땐 날씨보다 다른 이유로 지칠 때가 더 많았으니까. 찻길 옆을 지나다녀야 하니 위험했을 뿐만 아니라 차도 중심의 표지판을 보고 다녀야 했으므로 길 찾으랴, 차량 피하랴, 신경이 곤두섰다.

비록 온몸이 땀에 흠뻑 절였으나 기분은 상쾌했다. 오르막 내리막도 있었지만, 나무 그늘을 지나는 구간이 많아 무더위에도 장시간 탈 만한 길이라 여겨졌다.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가 순창 구간을 지날 무렵에 퍽, 하고 왼쪽 페달이 박살 나 길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이런!

자전거를 거치해놓고 작금의 형편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너른 들판 방죽길의 중간지점이었는지라 근처에 자전거 수리할 만한 데는 물론 민가 한 채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나무 그늘 하나 없는 곳이어서, 무섭게 내리쬐는 뙤약볕을 고스란히 받아야 하는 처지라. 네이버 지도를 켜고 자전거 수리점을 찾아봤으나, 제대로 손보려면 아무래도 순창 읍내나 곡성 읍내로 가야 할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너무 멀었다. 시오리쯤 가면 적성이란 면 소재지가 있긴 한데, 자전거 수리점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설혹, 그곳에 수리점이 있기로서니 거기까지 어떻게 자전거를 끌고 가? 앞뒤 짐 무게만도 20㎏이 넘는데? 이 더위에 길바닥의 열기까지 견디면서 끌고 갈 바에야…. 입에서 연신 욕지거리가 나오는 걸 참으며 그늘이 될 만한 곳부터 찾았다. 다행히 저 앞쪽에 퇴비 포대를 쌓아놓은 더미가 보였다. 자전거를 끌고 가 포대에 붙여 세웠으나, 더미 높이가 내 어깨만큼도 되질 않아 그늘은 장딴지나 가려주는 정도였다. 타는 목마름에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곤, 이제 페달이 아니라 뇌파를 있는 대로 굴러야 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내 미니벨로의 페달은 접이식인데다 재질도 플라스틱이었다. 값싼 자전거라 뭐 그러려니 예사로 여겼고. 무거운 짐을 싣고 장거리를 돌아다닐 요량이었으면 튼튼한 페달로 바꿔야 했는데 말이지. 그나마 행운이라면, 페달의 발판은 떨어져 나갔어도 베어링으로 돌아가는 축 부분은 용케 남아있었다는 점이다. 그럼, 발바닥을 거기에 어느 정도 붙일 수 있게만 한다면 굴릴 수 있다는 말인데?

곰곰이 궁리한 끝에, 발바닥을 붙여 힘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았다. 옳지! 배낭을 풀어 코펠 컵을 꺼냈다. 접이식 컵의 굵은 철사 손잡이를 떼다가,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가느다란 찍찍이로 페달의 베어링 축 부분에 동여맸다. 이격으로 좀 흔들거리긴 했으나 발바닥에 대고 페달을 밟을 수는 있었다. 발 중앙에만 힘을 줘 굴리다 보면 쥐가 나지 않을까 걱정이 들긴 해도.

다음날 종주 길에 있는 향가 유원지의 무인 공방도 월요일이라 문을 닫아서, 페달은 고치지 못한 채 사흘간의 종주를 마쳤다. 나는 산행할 때도 그렇지만, 사소한 장비 문제로 중간에 돌아오는 일은 거의 없다. 정말 위험한 악천후나 몸에 이상이 있으면 모를까. 중도에 자주 포기하면 나중엔 어떤 일의 완료는커녕 엄두조차 선뜻 내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소설 창작도 마찬가지. 장편소설을 쓰노라면 몇 번이나, 별의별 장애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이때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면 이야기 전개가 흐지부지되고 만다. 그래서 진정한 소설가들은 이런 장애물을 넘기 위한 자기만의 방법을 꾸준히 찾는다.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하든 말든. 손잡이를 발잡이로 쓰든 어떻든. 대개는 미친 짓이라고 하는 그 일의 결과물 또는 작품이야말로 최고의 성공작이 될 확률이 높으니까.

문형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