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니문. 대통령이 잘 못해도 국민이 너그럽게 봐주는 시기다. 윤석열 대통령의 허니문은 유독 짧았다. 길게 잡아도 6·1지방선거까지다. 민심은 취임 두 달(10일)을 앞두고 싸늘해졌다. 지난 8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37%까지 떨어졌다.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지난 주보다 7% 포인트 오른 49%.

주목할 대목은 지지율 하락의 속도. 한국갤럽 기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직무평가 긍정률이 처음 40%를 밑돈 것은 취임 1년 10개월만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취임 2년 5개월이 지나 40%대가 무너졌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할 무렵이다. 윤 대통령에 비하면 문 전 대통령은 ‘레임덕’ 없이 퇴임한 셈이다.

여권의 고민은 반전을 기대할 카드가 마땅찮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다툼에 한창이다.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행보는 언제 터질지 모를 ‘핵폭탄’이다. 윤 대통령의 현실 인식도 논란을 부른다.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 서툴다는 해명은 애교로 봐줄 수 있어도 “문재인 정부보다 낫다”는 식의 갈라치기 는 득보다 실이 크다.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통합’과도 거리가 멀다. 0.73% 포인트 차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면 중도·진보까지 아우르는 정제된 언어를 써야 한다. 스스로를 ‘보수를 위한 대통령’에 가둬선 국정동력이 생길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출근길 도어스테핑에서 윤 대통령이 강조한 말에 해답이 있다.

① 국민만 보고 간다 = 국회 다수당은 야당이다. 윤 대통령 인기가 높아야 야당 협력을 끌어낼 수 있다. 현재 유권자는 윤 대통령에게 ‘30%대 지지율’이라는 회초리를 들었다. 결국 정부가 먼저 할 일은 ‘무엇이 국민을 화나게 했나’에 대한 성찰이다. “국민만 보고 간다”고 했다가 “(여론조사는) 의미 없다”고 돌변해선 민심을 되찾을 수 없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조차 “대통령이 대중과 의회와 함께 가야 국정동력이 생긴다. 대중이 정부 정책에 영합해 주지 않으면 국정 동력을 찾기가 어렵다”고 지적(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했다. 또 “지난 두 달 동안 정부가 보여준 여러 정책이 자기를 지지하지 않은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매력이 없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② 인사 기준은 전문성과 역량= 윤 대통령은 내각 인사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자 전문성과 역량에서 빈틈 없는 사람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도덕성도 “전 정부에서 밀어붙인 인사들을 보면 비교가 될 수 없다”고 자신했다. 그 결과 검찰 출신이 행정부와 대통령실의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두 달 넘게 공석이다. 정호영 후보자가 자녀 특혜논란으로 낙마한 데 이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던 김승희 후보자마저 물러났다. 코로나19 재확산과 원숭이두창 경고음이 켜졌는데 방역수장은 없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도 마찬가지. ‘아빠 찬스’ 의혹을 받던 김인철 후보자는 윤석열 내각 후보자 중 1호로 낙마했다. 박순애 사회부총리는 음주운전과 논문 표절·제자갑질 의혹에도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됐다.

10일에는 ‘성희롱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송옥렬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가 사퇴했다. ‘전 정부에서 밀어붙인 인사’보다 무엇이 낫다는 것일까.

③ 공정= 야당은 윤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정상회의에 이원모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배우자 A 씨가 동행한 점과 윤 대통령 친인척 B 씨가 선임행정관으로 임명된 것은 특혜이자 이해충돌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실은 A 씨가 전문가라서 무보수 자원봉사를 했다고 반박한다. 국제행사 기획 전문가는 외교부에도 넘쳐난다. 기자들이 ‘공무원이 아닌 사람을 꼭 발탁해서 데려간 이유’를 재차 묻자 대통령실은 “A 씨가 대통령 부부와 오랜 인연이 있다. 대통령 부부의 의중도 잘 이해해야 최대한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과 찍은 사진은 100% 확실한 ‘신원 보증’ 카드다. 하물며 민간인이 해외순방에 동행했다면 막대한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더 큰 문제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비판하던 여당은 전 정부 인사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한동수 대검찰청 감찰부장은 ‘제대로 일 할 수 없는 상황’ 이라며 사의를 표했다. 사정이 이러니 보수언론조차 “윤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지적한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정치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로 ‘반지성주의’를 꼽았다.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린다”고 했다. 새 정부에서 반지성주의는 사라졌나. 혹시 윤 대통령 스스로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있는 건 아닌가. 누구는 적, 누구는 동지로 보는 건 아닌가. 되돌아볼 때다. 마이웨이를 고집할 때가 아니다.

이노성 디지털부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