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얘기가 다소 지저분할 수 있음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신호를 기다리며 차 안에 혼자 있는 남성은 코를 파면서 짧은 시간을 요긴하게 보낸다고 한다. 여기서 방점은 아무래도 ‘혼자 있는’과 ‘남성’에 찍힐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코를 파는 일이 흔하고 그런 행위가 성별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알려져 있다. 그러나 코를 파는 행동이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들켰을 때 중인환시(衆人環視)의 창피를 당할 수도 있는 코 파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인간 사회에 만연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끔 과학자들은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황당한 연구를 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창의적 발상이다. 여러 국가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모여 코 파기와 관련된 인간의 유전자가 있지 않을까 연구한 적이 있다. 예상치 못했던 ‘세렌디피티(뜻밖의 발견)’가 과학의 진정한 맛이라면, 코딱지를 연구하다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미생물 세계의 장관을 접하지 말란 법도 없다. 결론은 코 파는 일이 콧구멍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연 선택된’ 행동으로, 인류의 생존에 뭔가 이점이 있다는 것이다. 콧구멍을 청결하게 하는 일이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 신호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내용에는 제법 솔깃해진다. 소량이나마 초콜릿에도 들어 있는 카나비노이드는 대마초의 주성분이며, 우리 뇌 안의 보상 회로에 작용하는 신경전달 물질이다. 이를 통해 코 파는 행위가 ‘탐닉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코 파기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코 파는 행위가 즐거움을 준다거나, 가려운 데를 긁는 행위가 뇌의 행복 중추를 자극한다는 연구도 있었다. 2001년, ‘흉내 낼 수 없거나 흉내 내면 안 되는’ 참신한 연구 결과에 수여되는 이그(Ig) 노벨상 수상자 인도의 안드라데와 스리하리는 200명을 대상으로 코 파는 행위를 조사했다. 결과에 따르면, 코 파는 일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행하는 매우 보편적인 인간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임상 정신의학 저널에 소개된 이들의 연구 결과 중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심지어 코딱지가 맛있다고 답했던 아이들이 4.5%나 된다는 점이다. 고백하자면 나도 코딱지의 짭조름한 맛을 기억한다.

지인으로부터 코딱지를 먹는 일이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헐’하는 느낌과는 달리 그 출처는 세계 최고의 과학 저널이다. 코딱지에 사는 미생물이 항생물질을 만든다는 내용으로, 미생물에 대한 기존 통념을 흔들어 놓았다. 흔히 우리는 미생물을 ‘인간의 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그 확신은 커졌다. 하지만 알고 보면 대부분의 미생물은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일부 미생물은 인간에게 유익한 생명체들이다. 서점에 가면 미생물과 미생물균체(마이크로바이옴)에 관한 책을 쉽게 볼 수 있다. 몸속 세균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전체 세포보다 열 배 정도 많고, 그 무게는 무려 고기 ‘두 근 반’에 이른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대장(大腸)을 근거지로 인간의 소화기관이 처리하지 못한 섬유질 등을 먹고 살면서 인간에게 영양소를 되돌려준다. 북적거리는 대장이 아니라도 우리 몸 곳곳에서 미생물은 꿋꿋이 살아가며, 아름다운 공생을 이어간다. 그 수많은 세균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콧속에도 100종에 가까운 미생물이 상주한다. 사람마다 생김이 다르듯 이들 미생물의 구성도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어떤 사람들의 코에는 루그더닌(lugdunin)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항생제를 만드는 미생물이 산다. 이 물질은 항생제 내성을 가진 고약한 세균의 생장을 억제할 수 있다. 루그더닌을 만드는 미생물을 보유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병원성 세균에 대한 무기를 하나 더 가진 셈이다. 세균과 미생물에 관한 질문은 계속돼야 하고, 그 답을 얻기 위한 연구도 지속해야 한다. 물음을 거듭하다 보면 우리 몸속의 작지만 의미 있는 또 다른 세계가 시나브로 그 참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찮게 보지 말라’고 코딱지는 경고한다. 우리 인체란 그런 것이다. 코딱지마저도 소중하다.

윤부현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