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에는 사람이 농경을 시작하면서 야생 동물을 가축으로 길러 고기를 손쉽게 먹게 됐지만, 그 대가로 치명적인 감염병을 얻게 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 유발 하라리는 이것을 인간과 가축 간의 ‘파우스트적 거래’로 표현했다. 온갖 향락을 얻는 대가로 악마와 계약을 맺고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사람은 고기라는 매혹적인 음식을 선택한 대가로 치명적인 질병에 시달리게 됐다.

그림= 서상균 기자

오랜 기간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 결핵 홍역은 가까이 키우던 소에서 사람에게로 옮겨온 질병이다. 영유아에게 치명적인 기침을 일으키는 백일해는 돼지와 개에서 왔고,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철새와 오리 같은 가금류에서 왔다. 그 외에 말라리아 페스트 콜레라 등 여러 가지 전염병이 동물의 병에서 진화해 사람에게 병을 일으킨다. 인류가 유일하게 퇴치한 전염병인 천연두만 해도 20세기에 3억 명이라는 엄청난 생명을 앗아갔다. 가축의 몸에 살던 세균 바이러스들이 돌연변이를 거쳐 사람에게 건너와 병을 일으킨 것이다.

엄청난 희생에도 불구하고 육식에 맛을 들인 인간은 달콤한 유혹을 끊을 수 없었다. 농경 이전에도 사냥을 통해 고기를 먹을 수 있었지만 가축을 키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소와 돼지를 튼튼한 우리에 몰아넣고 마당에는 닭과 오리를 키웠다. 먹이를 주다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가축을 잡아먹었다.

편하게 고기를 먹는 대신 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다. 특히 면역이 약한 아이들이 희생을 당해야 했다. 농경사회에서는 어린이 3명 중 1명이 성인 되기 전에 죽었는데 흉년으로 인한 기아 영양실조뿐만 아니라 전염병이 큰 원인이었다. 오랜 기간 전염병이 돌아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은 삶의 일상이었다. 전염병은 대규모 집단을 이루어 사는 사회적 동물에 한 해 발생하는데 좁은 지역에 다닥다닥 붙어사는 인간 사회에서 훨씬 빨리 퍼진다. 각종 백신으로 전염병을 예방하게 된 것은 20세기 전후로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현미경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미생물이 일으키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노력이 항생제 개발로 이어졌다.

2000년을 전후해 퍼진 신종 감염병 니파, 사스 그리고 메르스 바이러스는 야생 동물 박쥐에서 기원한다. 박쥐는 가축이 아니지만 이 바이러스들은 중간 숙주 돼지 사향고양이 낙타를 거쳐 사람에게 침투했다. 사람과 가까운 포유동물이 중간 매개체가 된 것이다. 박쥐에서 건너온 코로나19의 중간 숙주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처음에는 천산갑이 의심받았지만, 확실하진 않다. 몇 차례 변종을 거쳐 탄생한 오미크론 바이러스 역시 지금도 계속해서 유전자를 바꾸고 있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자연선택의 결과이다. 숙주에 자리 잡고 자기복제를 통해 증식하고 다시 퍼져야 생명력이 오래간다.

파우스트적 거래는 가축에게도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소 돼지 양의 숫자는 각각 10억 마리에 달하고 닭은 무려 250억 마리 이상으로 엄청나게 불어났지만, 공장식 밀집 사육으로 농장 동물의 복지는 형편없이 추락했다. 수명도 대폭 줄어 야생 닭은 7~12년, 소는 20~25년인데 반해 가축화된 닭과 소는 태어난 지 불과 몇 주 내지, 몇 개월 만에 도살당한다. 갓 태어난 돼지는 좁은 공간에 밀집으로 사육당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서로 물어뜯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 이빨과 꼬리가 잘려 나간다. 냄새를 줄이려고 수퇘지들은 마취 없이 거세당하고, 어미 돼지는 좁은 금속 우리에 갇혀 평생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운 좋게 집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반려동물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최근 동물 복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가축이 겪는 고통을 줄여야 사람도 평안하다. 인간이 육식을 포기하진 않겠지만, 잔인한 사육은 그만해야 한다.

정승규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