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할 때마다 나는 마을버스를 이용한다. 빙빙 둘러 가는 불편함이 있고 교통 체증 또한 심하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까, 매번 발을 동동 구르며 조바심을 내곤 한다. 그러면서도 마을버스를 타는 건 직장 근처로 가는 유일한 버스이자 집 앞에 정류소가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얼마 안 되는 거리를 5000원이라는 돈을 낭비하면서 택시를 탈 수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운행하던 버스 수마저 줄었다. 핸드폰에 깔아놓은 앱을 보고 시간 맞춰 서둘러 나가도 어찌 된 일인지 버스가 잘 오지 않았다. 20~30분의 시간을 길에서 소비하고 나서야 그나마 버스를 타는 경우가 허다했다. 게다가 내 얼굴을 기억하는 기사 아저씨의 쓸데없는 질문 공세 탓에 버스 타기조차 꺼려졌다. 예를 들면 “예전엔 여기서 안 탔는데, 이사했네?” “직장이 이 근처인가 봐요?” “애는 하나? 둘?” 이런 말들이 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못 들은 척 구석자리로 가서 애꿎은 핸드폰만 노려보고 만다.

이러다 보니 나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비애’라고만 여기기에는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낄 때쯤이었다.

전국 8개 지역에서 파업 예고, ‘4월 26일부터 시내버스·광역버스 파업으로 인해 버스 이용에 불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를 접했다. 응? 이건…또 뭔가? 그날 새벽, 다행히 버스노사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에 졸였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치밀었던 화를 식히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혼자서 얼마나 고군분투했던가? 내 마음과도 극적인 타협을 했다. 그래서일까, 그동안의 쌓인 스트레스도 웃어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요즘, 새로운 스트레스가 꿈틀꿈틀 기지개를 켰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장애우를 자주 마주치면서부터 잠자고 있던 화가 다시 깨어나기 시작한 거였다. 자자의 ‘버스 안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장윤정의 ‘어머나’ 등 따라 부르는 노래도 다양했다.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장애우는 사람들 시선 따윈 상관없다는 듯 목 놓아 노래를 불렀다. 그 모습이 아주 즐거워 보였다. 꼬불꼬불 라면 면발 같은 머리에 촌스러운 옷차림도 우스꽝스럽기도 했다.

예전, 장애인 학교에 견학 차 갔다, 느닷없이 한 장애우에게 가슴을 세게 얻어맞은 이후로 장애우에 대한 편견 아닌 편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조용하게, 출퇴근하고 싶은 나를 왜 이토록 괴롭히는 것일까? 잔잔한 마음에 돌을 던지는 모든 것들이 짐스러웠다.

장애우들과 아이들이 함께 하는 체험활동을 하러 복지관에 가게 됐다. 전단지로 상자를 만들고 양말도 접어 집으로 가져가는 행사였다. 뜨거운 햇살 아래 유난히 구슬땀을 흘리며 아이들에게 상자 접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한 장애우가 눈에 띄었다. 바로 이어폰을 낀 채 버스 안에서 가요며 트로트를 큰 소리로 따라 부르던 그 장애우였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때처럼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아이들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했다. 복지관 선생님 말씀으로는 장애우가 사회에 나가 떳떳한 직업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정리·정돈하는 기술을 훈련하는 거라고 했다.

버스 안에서 시끄럽게 노래를 부르던 모습, 복지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 둘 다 장애우의 모습이었던 거다. 음악을 들으며 노래를 부르는 건 자신만의 스트레스를 푸는 하나의 방법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일터에서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기 위한 충전의 시간이랄까. 그 속에는 자기의 장애를 더 이상 장애로 여기지 않는 당당함이 있었다. 접은 상자에 양말을 넣어주는 짧은 시간, 내게는 견고했던 편견의 모래성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시간이었다.

생각해 보면, 일상의 사소한 스트레스로 투덜대기만 했던 나야말로 마음의 장애가 있었던 모양이다.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거늘. 버스를 타고 내릴 때면 성도, 이름도 모르는 장애우를 기다리게 된다. “안녕!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듣니?” 자꾸 꼬치꼬치 캐묻게 될 것 같다.

장미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