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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로컬’은 서울을 위한 상차림이 아니다 /김미양

  • 김미양 작가
  •  |   입력 : 2022-05-03 19:50:3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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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

제주 출신인 나는 이 말을 끔찍이도 싫어했다. 사람은 지방에서는 살 수 없는 것일까? 한양이 도읍지로 정해지던 600년 전에 생겨났다는 이 말은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유효한 듯하다. 많은 학생이 ‘인 서울’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또 많은 청년이 ‘인 서울’ 취업을 위해 분투한다. 대전의 사립대를 졸업하고 부산에 정착한 이력을 지닌 나조차도 속내는 크게 다르지 않다. ‘말(馬)’이 아닌 나는 어떻게든 섬 밖으로 나가 생활하고 싶었고, 서울살이를 갈망했다.

서울을 향한 미련을 완전히 털어내게 된 건 부산에 대한 애착이 생겨나면서부터였다. 피란시절 타지에서 밀려들어 온 사람을 품어주었듯, 서울로도 올라가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지도 못한 채 방황하던 나를 안아준 곳이 바로 부산이다. 짭짤한 바람 불어오는 바닷가에서, 산비탈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길 위에서, 누군가가 남기고 간 삶의 흔적들을 발견할 때면 타향살이의 설움이 달래지곤 했다.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예전에는 서울에서 누릴 수 있는 혜택에 관심이 쏠렸다면, 지금은 내가 사는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찾아나서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다.

올봄 ‘로컬식탁’이라는 TV 예능프로그램이 시작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서울 중심이 아닌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매력을 지닌 지역의 식문화를 보여줌으로써, 결국은 그 안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녹여 전달하는 방송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지난주 우연히 보게 된 ‘로컬식탁’ ‘대구 편’은 내 기대와 달랐다. MC와 패널들은 서울 방송국의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대구에 직접 내려와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로 직배송된 음식들을 펼쳐놓고 먹으며 이야기하는 형식이었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이나 ‘신계숙의 맛터사이클 다이어리’ 같은 프로그램에선 허영만과 신계숙이 직접 두발로 그 지역을 체험한다. 지역에서 만난 이들과 유대감을 쌓으며, 식재료 생산자와 요리사에 대한 존중의 마음마저 담아낸다.

그러나 ‘로컬식탁’은 결이 달랐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프로그램 속 연예인들은 마치 ‘사대문 안’ 선비들 같았다. 그들은 지방에서 올라온 음식들을 스튜디오에 펼쳐놓고 맛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만 나열할 뿐 음식 안에 담긴 누군가의 삶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이날 ‘대구 편’에선 대구 출신 배우도 패널로 초대되었다. 서울말을 구사하는 그는 제작진의 요구로 사투리 한 문장을 들려주며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쑥스러워했다. 배우로 데뷔하기 위해 고향의 언어를 지웠을 그가, 다시금 방송에서 웃음을 위해 사투리를 선보이는 대목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물론 프로그램 제작 의도에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다. 코로나 시대에 각 지역을 직접 가보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랜선’ 미식여행을 지향한다는 건 새로운 아이디어다. 방송을 통해 지역 정보를 접한 후 여행을 계획하는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이는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방송을 보고 난 후 며칠간 찜찜한 마음이 계속되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로컬식탁’은 새벽배송 플랫폼 ‘마켓컬리’와 연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간 방영되었던 ‘부산 편’의 물떡과 어묵꼬치, ‘대구 편’의 납작만두 등 각 지역의 음식이 ‘마켓컬리’ 쇼핑몰 안의 판매 품목으로 들어와 있었다. 내가 우려하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로컬을 위한 듯 보이는 이 방송이 결국은 중앙이 지방을 잠식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끝나지는 않을까?

스마트폰 클릭 몇 번이면 곳곳의 산해진미가 현관문 앞에 도착하는 시대다. 그러나 로컬 음식을 손쉽게 소비할 수 있다고 해서 로컬의 문화까지 단박에 이해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로컬 문화는 중앙을 위한 소비재가 아니다. 지역의 사람들과 섞여 어울릴 때라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로컬의 ‘찐 맛’이 존재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지역에도 사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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