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24일, 많은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두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 그날, 누군가는 노숙인이라는 이유로 감금되었다. 감염병예방법에 명시된 감염의심자 격리시설이 있고, 격리시설에 대한 제도적 기준이 있는데도 빼곡히 밀집된, 부적절한 시설에 밀접접촉자라는 이유로 노숙인 20여 명이 약 39시간 동안 감금되었다.
사회복지연대는 해당 사실을 인지하고 인권침해에 따른 성명발표와 진정을 접수했다. 지난 3월 부산시 인권침해구제위원회에서 조사 결과 해당 노숙인복지시설의 인권침해가 인정되었다. 또한 부산시의 지도감독에 대한 책임과 격리시설 미확보에 따른 책임도 인정되었다. 감염병 확산이 증폭되던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사회적 약자들의 보호와 감염병 관리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권고는 물론 분명한 책임과 대안이 마련되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그런데, 노숙인복지시설에서의 감금, 즉 기본권을 침해한 사건을 생각하면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다. 바로 부산에서 일어난 우리 사회 최대의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60년도 형제육아원에서부터 시작해 1987년 3월 피해자들의 탈출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사회복지의 탈을 쓴 국가폭력 사건이다. 보호가 필요했던 시민에서부터 무고한 시민까지 마구잡이로 잡아가 강제노역은 물론 온갖 인권침해를 자행했던 형제복지원은 2017년 잔여재산 청산으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피해 생존자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국회 앞 농성과 국토대장정을 비롯한 투쟁을 이어갔고 2020년 6월 비로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이 개정·시행되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이하 진화위)가 그 해 12월에 개소했고 작년 5월 조사를 개시하는 등 진상규명의 움직임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이른바 원생이라고 불리는 피해자들의 입소경력까지 포함한다면 무려 60여 년의 시간 동안 진실이 묻혀있던 형제복지원 사건은 바로 부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산에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지키지 못하고 무단으로 감금하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은 형제복지원 사건을 잊은 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당시의 부랑인이라고 정의했던 이들이 지금의 제도에선 노숙인이라고 명명되어 있으니 더욱 그렇다.
곧 있으면 진화위에서 1차 조사 결과 발표가 있을 예정이라는 소식이 있다. 하지만 부산시는 진상조사를 위한 자료 제출 외에 피해생존자, 유가족을 위한 어떠한 명예회복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 2020년에 설립된 부산시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규명추진위원회마저 시장이 바뀌고 난 이후 운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2021년 8월 부산시 인권위원회가 첫 정책권고로 제안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종합지원센터의 운영강화도 감감무소식이다. 2020년 부산시에 제출된 연구보고서에는 피해 생존자들을 위해 의료지원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있었지만 현재 ‘부산광역시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명예회복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는 의료지원 사업에 대한 근거마저 없다. 공공병원을 통해서든 민간의료기관을 통해서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책임은 국가와 부산시에 있다. 국가차원의 배·보상 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살아남은 이들이 하루라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하는 일은 기록을 발굴하고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기억하기 위한 캠페인과 각종 행사들을 진행하는 표면적인 일에 머물러선 안 된다. 살아남은 이들이 그 증거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 과거에는 국가가 폭력을 자행했지만 이제는 보호하고 지켜드린다는 손길을 내미는 것에서 시작해야 마땅하다. 또한 형제복지원과 같이 사회복지의 탈을 쓰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반복되는 문제들을 방지하고 해결하는 일에 힘쓰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형제복지원 사건에 책임 있는 사람과 기관들이 사과를 해야 한다. 아직도 형제복지원에 시민을 잡아갔던 경찰의 사과가 없으며, 침묵했던 사회복지계의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진화위의 1차 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형제복지원 사건을 제대로 기억할 수 있는 행동과 정책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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