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올해 1분기 세계 선박 발주량 920만 CGT의 약 50%인 457만 CGT를 수주하며 2015년 이후 7년 만에 1분기 수주량에서 중국을 앞섰다. 대형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고부가가치 선종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조선산업은 2000년대부터 세계시장을 석권한 이후 우리나라의 주력산업으로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있다. 핵심설비를 통한 세계 최고의 선박 기술력 확보 역량이 경쟁력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조선산업은 1960년대 수출전략산업으로 지정된 후 1970년대 울산에 대형조선소가 건설되며 본격적으로 세계시장에 진출했지만 당시 대형선박의 성능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기반이 없었기에 유럽 일본의 기술과 데이터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1978년 대덕연구단지의 정부출연연구소(한국선박연구소)에 처음으로 국제 수준의 대형 예인수조가 구축되며 실질적인 연구개발이 시작됐다. 이후 예인수조를 활용해 국내 조선산업은 독자적인 선형 개발과 설계 기술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선박의 저항·추진, 운동·조종 등의 성능평가를 위해 선박모형으로 유체 역학적 시험을 하며 축적한 데이터로 최적의 선형을 설계하는 데 기여했고, 조선강국으로의 발전에 중요한 자산이 됐다. 또한 1970년대~1980년대 초 지속된 오일쇼크로 선박 운용의 경제성이 크게 주목받았을 때, 예인수조에서 에너지 절감형 선형개발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며 영국 일본 등 선진 조선국의 기술력을 추월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길이가 긴 물탱크의 양쪽 벽체 상부에 설치된 레일 위를 달리는 전차가 선박 모형을 끌고 다니며 선박의 성능과 안정성을 검증하는 예인수조의 활용은 1860년대 영국의 윌리엄 프루드를 통해 시작됐다. 그가 예인수조의 시험을 통해 정립한 프루드 수(Froude number) 개념은 최적의 선박 설계에 적용됐으며, 영국 해군의 지원을 통해 기계식 예인전차를 탑재한 최초의 선형시험수조를 건설해 1886년까지 15년간 군함 개발에 활용했다. 프루드가 남긴 선박 저항추정법은 1세기 지난 오늘까지도 조선공학자가 활용한다. 국내에는 1962년 처음으로 서울대에 예인수조가 설치됐고, 1971년 인하대와 1974년 부산대에 세워져 조선공학과 학술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그 후 지금까지 10여 개의 예인수조가 대형 조선사와 대학교, 연구소 등에 설치돼 컨테이너선 LNG선 유조선 등 저속형 대형 상선을 검증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이처럼 예인수조를 통한 연구개발은 대형 조선사 위주로 집중되며 상대적으로 중소조선산업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연구개발 지원은 부족했다. 중소조선산업이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의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서는 고속 예인수조가 필요하지만 예인속도 10㎧ 이상의 고속 예인수조는 대형 조선사 한 곳에 구축돼 운영 중인데, 중소조선사들이 개발하는 고속선박의 성능 검증에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고속선박의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해서는 성능 검증과 인증을 위해 선형 설계단계에서 모형시험이 필수적이지만 증소조선산업계는 국내에 활용할 수 있는 고속 예인수조가 없어 부득이하게 해외 수조를 이용하며 회당 수억 원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선형과 프로펠러 등 도면 일체를 고속 예인수조 기관에 제공해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국제해사기구 산하 국제수조회의에 따르면 전 세계에는 100여 개의 대형 수조가 구축됐으며, 고속 예인수조는 15개국이 보유하고 있다. 그중 미국은 6개의 고속 예인수조를 활용하고, 미해군연구소는 미 해군의 고속 수상함·수중함 및 수중무기체계의 성능 시험을 위해 세계적인 규모인 900m급의 고속 예인수조를 운영한다. 러시아의 크릴로프 연구소는 1.3㎞를 넘는 세계 최대의 고속 예인수조를 해군 및 상업용으로 활용한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도 고속 예인수조를 운영하며, 중국 등 후발 국가도 고성능의 고속선 개발을 위해 앞다투어 시설을 구축 중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선박 기술력 확보의 핵심시설인 고속 예인수조를 중소형 조선산업과 설계·엔지니어링 기반이 집적된 부산에 구축해 곧 본격적인 운용에 들어간다. 중소조선연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와 부산시의 지원을 통해 2018년부터 구축을 시작한 중소형 고속선박 설계지원센터가 이달 말 준공식을 앞두고 있다. 부산시 강서구에 있는 지원센터는 국내 조선산업계의 오랜 염원이었던 고속 예인수조를 380m급으로 구축했고, 최대 13㎧의 고속 예인전차 등 핵심장비를 탑재했다. 이를 통해 고속함정 경비정 여객선 해양조사선 해양실습선 등 특수선박부터 컨테이너선 유조선 벌크선 LNG·LPG 운반선 등 상선까지 선형과 엔진 설계 핵심성능 개발을 지원할 수 있게 돼 중소형 조선사가 도약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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