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포르투나(fortuna, 운)를 격렬하게 넘실대는 험난한 강에 비유합니다. 이 강이 노하면 그 거친 물결이 넘쳐 평야를 뒤덮고, 나무와 집을 파괴해버리며, 땅을 휩쓸어 이곳에 있던 땅을 저쪽으로 옮겨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강물의 특성이 그러해도, 평온한 시기에 제방과 둑을 쌓아 예방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훗날 강물이 불어 넘쳐도 수로를 따라 물줄기를 흐르게 해서 제방을 넘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물이 제방을 넘어 통제할 수 없어져도 피해가 덜 가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군주론’ 중에서)

저는 오늘 새로운 대한민국의 역사를 책임질 새 대통령께 변방의 한 인문학자로서 감히 마키아벨리와 한비자를 빌려 헌정의 글을 흉내 내고자 합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 또는 ‘행운의 여신’으로 번역되는 ‘포르투나’와, ‘덕’ 또는 ‘역량’으로 번역되는 ‘비르투’(Virtu)를 통해 당시의 혼란한 주변 국제 정세 속의 강력한 리더십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첫 구절에서 인용한 것처럼, 거친 강물처럼 제 마음대로 소용돌이치며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것이 국가의 포르투나라고 한다면, 이것은 군주의 능력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힘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포르투나는 인간이 아닌 여신에 비유되지요. 그러나 그러한 포르투나 역시 현명한 군주가 갖고 있는 역량과 지혜, 즉 비르투에 의해 예측되고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키아벨리가 말하고자 하는 리더십의 핵심인 듯합니다.

만약 리더가 그러한 역량을 가지지 못해 위기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과 실천을 행하지 못하다면, 국가의 운명은 거친 물살에 휩쓸려 파멸에 이를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기에 리더에게는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이 가져야 할 미덕과는 다른 덕목들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시대적 차이와 오역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군주론’이 권모술수와 악행을 권하는 ‘악마의 책’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공격을 받는 이유도 여기 있지 싶습니다.

그러나 꼼꼼히 이 책을 읽어보면, 마키아벨리가 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은 분명합니다. 그는 한 개인이 아닌 국가와 국민을 책임지는 군주에게 바라는 글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짊어지고 있는 공인으로서의 리더의 자세를 말입니다. 그러기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리더들의 필독서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요구하고 기대하는 ‘사랑’과 ‘도덕’과 ‘인덕’과 같은 기존 리더십의 덕목과는 정반대의 거친 덕목들을 리더십의 필수로 요구합니다. 리더는 개인의 기분이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인정에 의해 판단해서는 안 되며, 성인군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때로는 냉혹함으로 평가되는 행동이나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도 취해야 하며, 심지어 바람이 부는 대로 자신의 행동 방향을 바꿀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모든 행위가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리더로서의 판단이고 결단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적인 안위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작금의 대한민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포르투나의 복잡다단함과 변화무쌍함 속에 놓여 있습니다. 미중 간의 갈등과 러시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속 세계 정세의 긴박함, 그리고 장기간의 전 세계적인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까지 겹치면서 더 험해진 물살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갈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급박한 상황에서 준비된 비르투를 갖지 못한 리더는 국가와 공동체 모두를 더 큰 위기와 몰락으로 내몰 수 있기에 이번 대통령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선거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절체절명의 시점에서 다수 국민에 의해 선택된 새 대통령의 어깨는 더한층 무거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왕이 하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라면,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국가 경영에 대한 권한을 부여받고 국가의 포르투나를 극복해야 할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서 리더는 때로는 여우의 교활함을, 때로는 사자의 사나움을 가져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리더란 서생적 문제 인식과 상인적 현실 감각을 함께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다시 말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면서 주변 정세를 함께 살피고 판단한 후, ‘해야 할 일’은 반드시 추진하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뜻이지요.

아무쪼록 향후 5년의 시간 동안에는 사사로운 존재로서의 개인은 잊으시고,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과업을 실천하기 위해 과감히 포르투나에 맞서는 비르투를 지닌 참된 리더로 사시길 소망합니다. 때로 당신의 몫이 될 고독한 결단과 우아한 냉혹함도 함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