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정치사상을 전공하는 필자는 주자(朱子: 朱熹 1130-1200)가 늘 궁금했었다. 그렇게 말도 많고 비판적이었던 조선의 선비들이 왜 유독 주자에게는 각별한 존경심을 갖고 배우려고 했을까? 물론 주자의 학설이 젊었을 때와 노년이 다르다는 등 학술적인 논평과 지적은 있었다. 그렇지만 주자학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당시 학문의 위대한 스승이었다. 근대화 시기에는 유학(儒學)이 아무 소용이 없는 헛된 학문으로 내몰리면서 주자는 온갖 비난을 받기도 했다. 이것이 온당한 평가였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필자가 주목하는 점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왜 그를 그토록 따랐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실로 궁금했어도 어디서 흔쾌한 설명을 듣거나 구체적인 근거를 찾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필자도 ‘논어’와 ‘맹자’를 현대적으로 번역하고 해설하는 작업을 하다가 문득 그 비결을 짐작하게 되었다. 물론 필자만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모을 집(集)’자에 있었다. 주자를 자기 학설만 고집하는 냉혈의 교조주의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비록 유학적인 가치관이 판단기준으로 작용했지만, 학자로서 편협하거나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양한 견해를 모으는 것이 그의 특기였다.

‘논어’와 ‘맹자’를 공부할 때 전통서당에서는 원문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그것을 풀이한 주자의 해설서 집주(集註)를 함께 본다. 이런 책을 ‘논어집주(論語集註)’, ‘맹자집주(孟子集註)’라고 한다. 집주를 참고 하면 암호 같은 고전의 원문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고전을 해설하는 참고서에 집주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주자는 앞서간 학자들의 학설을 모으고 타당한 것을 골라서 요약했다. 그리고 거기에 자기 생각을 추가했다. 바로 이것이다. 그가 학문적으로 존경받게 된 까닭은 다른 사람들이 애써 이룩한 성과를 잘 이용하는 그 방법 때문이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지금도 학계에서 잘 실천되지 않는다. 학자로서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면 남을 인정하지 않는, 또는 낮게 보는 편협한 마음이 생기는데 그것이 더 이상의 학문적 발전을 가로막는다.

공자(孔子)는 세 사람이 걸어가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고 했다. 세 사람 중에서 한 명은 자기 자신이고, 그 외 두 명 중에는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이 있고 또 자기보다 나은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보다 앞서가는 사람에게 배우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도 또한 배울 점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이 말은 일반 교양인에게는 물론 학자들에게 더욱 소중한 충고다. ‘논어’에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정으로 아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이것은 바로 지식의 세계에서 이미 알려진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그야말로 지식의 현황과 과제를 먼저 파악하라는 말이다. 인문계 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논문 쓰는 법을 지도할 때 연구하려는 주제에 대해 이미 학계에서 이룬 성과를 먼저 검토하라고 지도하는 것도 역시 ‘논어’의 이러한 정신에 토대를 둔 것이다.

필자는 이런 공부 방법을 모범적으로 실천한 학자가 바로 주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주, 장구(章句), 혹문(或問), 어류(語類)와 같은 방대한 그의 저술은 고전에 나오는 난해한 개념을 공부할 때 하나씩 단계적으로 참고하면 큰 도움이 된다. 주자 이전에 사서삼경에 대해 논했던 수많은 학자들의 주장이 잘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생각이 바뀔 수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런 주자를 따라 배우고 싶은 열망이 여전하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은 고전의 문장이나 개념을 해설하는 책을 낼 때 먼저 선배 동료 학자들의 학설을 인용하고 비평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이런 학문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 또한 주자의 방법론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 3월이다. 학교에서 새 학년과 새 학기가 시작됐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무엇을 먼저 교육할 것인가를 고민할 때, 필자는 다른 사람이 이룩한 기존 성과를 존중하고 그것을 배우려는 자세를 갖도록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학문의 세계에서 좀 더 효과적으로 진보하려는 사람일수록 필수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렇게 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시간도 단축할 수 있다. 맹자(孟子)는 전망이 좋은 집을 원한다면 언덕 위에 짓고 연못을 깊게 파려면 저지대에서 공사에 착수하라고 했다. 주위 환경을 이용하라는 뜻도 있지만, 선현들이 축적해놓은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기를 강조하는 말이다. 올해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이 주자가 했던 것처럼 필히 그 분야 선배들이 발명한 성과를 먼저 분석해보고 지금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 자기가 새롭게 추가할 것은 없는지 찾아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