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육십간지 중 39번째 해로, ‘검은 호랑이의 해’다. 올해는‘나의 해’라며 호기로웠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월이다.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다짐도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럼에도 지나간 해를 자꾸 되돌아보게 된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기쁘고 떳떳하게 살았는지….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뜻하지 않은 일을 경험하게 된다. 좋은 일일 때는 말 그대로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반대로 좋지 않은 일일 때는 그 기억이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다. 어이없는 일로 오해를 받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불합리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나는 당당하고, 떳떳하게 내 의견을 말하지 못했다. 고개만 숙인 채 무언가 아주 잘못한, 대역 죄인이 돼 버렸다. 변명도, 해명도 할 기회가 없다. 타인은 지옥이다. 상대를 미워했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상황을 분석하기보다는 내게 닥친 이 순간이 우울하고 슬펐다. 사람도, 상황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잘못된 확신이 거짓을 만들어내고야 마는 걸 보면서도 그저 분노만 했을 뿐이었다.

상대방과 몇 번의 전화 통화를 했다. 숱한 사과가 오가고 나서야, (사과 만이 해답이었을까? 여전히 의혹은 남는다) 겨우 일은 마무리가 됐다. 다행히 오해가 풀리긴 했다.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상처만 남긴 감정싸움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듯했다. 빈 자루같이 텅 빈 마음을 추스르는 것도 에너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살아가면서 기쁘고 떳떳하게 살았노라,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소박한 담소와 깜짝 퀴즈를 푸는 TV 프로그램에서 두봉(르네뒤퐁, 92세) 신부님을 뵈었다. 신부님은 1954년 한국으로 부임한, 첫 외국인 안동교구 초대 교구장을 지내신 분이다. 26세 프랑스 청년은 70년 세월을 농민 운동과 농촌 문제, 어렵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왔다.

6·25 전쟁으로 피폐해진 한국 사회와 사람들을 보면서도‘한국 사람이 좋았다’ ‘도울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말로 신부로서의 일생을 이야기해 주셨다. 처음에는 사람들에게‘드봉’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드봉은 화장품 이름이고, 산봉우리에서 노래하는 두견새라는 뜻이라며 박장대소하시는 신부님의 모습은 어린아이처럼 맑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지금은 은퇴하셔서 집이자 성당이기도 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채소를 키우고, 사무를 보고 계신다고 했다. 이웃 주민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고, 함께 아픔을 나누고, 함께 노래 부르시는 모습 또한 참 정겹다. “새것이 아니더라도 괜찮아요.” “햇빛이 잘 들어와서 좋아요.” 평범한 생활이었고 그래서 더 기쁘고 떳떳했다고 하셨다.

또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했다. 두봉 신부님의 말씀이 여전히 메아리처럼 마음을 울린다. 우리의 삶이 기쁘고 떳떳하기를 바라신다는 온화한 그 말씀 말이다. ‘조금 더 타인을 사랑하기’ ‘많이 나누고 베풀기’ ‘타인 이해하기’ ‘쓸데없는 감정싸움 줄이기’ ‘차이점보다는 공통점 찾기’ ‘우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기’라는 항목들을 나만의 버킷 리스트에 넣어본다. 신부님의 말씀처럼 ‘기쁘고 떳떳하게 살았다’고 당차게 말 할 수 있는 날이 곧 오지 않을까 한다. 당장 올해의 목표부터 정해 보았다. ‘기쁘고 떳떳하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