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근처에는 역사가 제법 오래된 ‘서울 안산초등학교’가 있다. 안산(山) 기슭에 있어서 그런지 평소 무척 조용한 학교다. 그런데 최근 이 학교와 주변은 플래카드와 대자보로 어수선하다. 이유는 정부가 ‘미래를 담는 학교’(일명 미담학교)로 부르면서 추진하는 ‘그린 스마트 스쿨’을 학부모들이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린 스마트 스쿨은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그린뉴딜정책의 5대 사업 중 하나다. 아울러 2025년까지 약 21조 원의 예산을 들여 30년 이상 된 학교들을 리모델링해서 에너지 효율과 정보화를 높이는 야심찬 사업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예산을 들여 학교를 현대화하겠다는 데 왜 학부모들은 반대를 할까?
학생들 학부모들과 논의 한 번 없이 학교 측이 정부와 추진 결정을 하고 학교를 공사장으로 만들었다 한다. 교실을 잃은 학생들은 임시 컨테이너 공간에서 수업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사를 해보면 이렇게 학부모들이 나서서 그린 스마트 스쿨을 반대하는 학교들이 전국적으로 의외로 많다. 기후 대응을 위해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당사자인 학부모와 학생의 반대로 그린 스마트 스쿨이 좌절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작년, 2050년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아울러 탄소 중립으로 가는 고속도로로 그린뉴딜을 설계했다. 이를 위해 2025년까지 90조 원을 투자하고 일자리도 160만 개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그런데 그린 스마트 스쿨처럼 우리나라 그린 뉴딜 고속도로에 시민이 보이지 않는다. 시민 없는 그린뉴딜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까? 알다시피 우리나라 정부가 온실가스를 줄인다고 농촌에 설치하려던 태양광 사업은 농민의 반대로 좌절되고 있다. 그러자 대안으로 제시된 서해와 동해에 2030년까지 12기가의 대규모 해양 풍력발전 단지 구축도 지난해 11월 19일 해양수산부가 반대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이유는 어민들이 반대해서란다.
이렇게 시민이 반대하는 우리나라의 그린뉴딜은 지금 길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그린뉴딜로 만들겠다던 160만 개의 일자리는 어떨까? 이것도 막대한 돈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그린뉴딜을 다시 살려 낼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할 해법은 무엇일까? 그린뉴딜이라는 고속도로를 다시 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당사자인 시민의 참여와 결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데에 길이 있지 않을까?
세계은행은 21세기 초 10년 넘게 기후와 빈곤 현장에 학교 병원 태양광발전소를 지어주었다. 이것이 밀레니엄 프로젝트다. 그러나 2013년 6월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영국 ‘톰슨로이터재단’의 발표에서 세계은행의 성과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현지 주민의 소외와 의존도만 높아졌을 뿐, 주민 스스로 단단한 삶의 기반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후위기 현장, 몽골의 바양노르 군(郡) 주민은 다른 길을 걸었다. 2007년부터 바양노르 40여 가구의 기후난민들이 모래땅 30만 평에 숲을 조성했다. 여기에 숲을 만들어 농사와 과일나무 재배를 결정한 것은 주민이었다. 주민이 협동조합을 구성해서 중요한 일들을 직접 결정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길을 만들어 갔다. 그 결과 유엔은 2014년 바양노르 사례에 ‘유엔 생명의 토지상 최고상’을 수여했고, 기후피해를 입은 나라들에게 대응 모델로 권고했다.
시민공동체를 주축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움직임은 선진국에도 있다. 2019년 미국 뉴욕주는 그린뉴딜 예산의 40%를 기후피해 시민공동체에 배정하는 법을 만들었다. 2021년 11월, 뉴욕주 인구의 절반이 넘는 950만 명이 뉴욕주 그린뉴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시민공동체가 결정하면, 그린뉴딜 예산을 지원받아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한다. 여기서 생산된 전기는 시민의 것이 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탄소중립과 그린뉴딜 고속도로를 열어가는 열쇳말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인 시민이 되어야 한다. 결국 시민의 지지가 정책 성공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서울 안산초등학교도 학부모와 학생의 참여와 결정을 보장했다면 기후위기 대응을 모범적으로 하는 ‘미담 학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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