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오미자차를 즐겨 마셨다. 빨갛게 우러나와 색감도 좋고,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의 맛이 나 내 입에는 알맞았기 때문이다. 다섯 가지 맛을 낸다지만 실제로 마셔보면 신맛이 조금 더 돈다. 그 신맛이 구강건조증이 있는 나의 혀 세포를 적당히 자극해주어서, 입 마름 해소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다 오륙 년 전부터는 커피를 줄곧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는 그 이전에도 마시긴 했다. 하지만 설탕이 들어간 커피 믹스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마신 동기가, 스타벅스 같은 유명 브랜드를 좇아서도 아니고 요즘 세태를 따라 하려고 그랬던 것도 아니다. 계기는 통풍 때문이었다.

초여름 어느 날 밤에 왼쪽 엄지발가락이 빨갛게 부어오르면서 너무너무 아팠다. 신발이 맞지 않아서 그렇나, 아니면 어디에 부딪혀 그렇나, 하며 밤새 끙끙 앓았다. 상비약으로 준비해둔 해열진통제를 먹어 봤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발가락에 아무것도 닿지 않게 했음에도 새벽쯤엔 고통이 더욱 심해졌다.

날이 밝아 병원에 갔더니만 통풍이라고 했다.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그 통풍. 주사 맞고 처방전을 받아 약으로 다스린 결과, 한동안은 괜찮다가 또 재발했다. 의사와 약사, 양측에서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요산이 쌓여서 그러니 요산이 많은 음식 섭취를 줄이는 동시에, 요산이 소변으로 빠져나가도록 물을 많이 마시라고.

그래서 생각해본바, 오미자차를 마시면 입에 침이 고여 물이 그다지 당기지 않았음을 알고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엔 카페인이 들어있어 물을 당기게 하는 작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렇다고 하루 석 잔 이상을 마시지는 않았다. 잠이 오지 않는 등의 부작용을 염려해서가 아니라, 의사의 말도 물을 과다하게 마시라는 얘기는 아닐 테니까.

그러던 커피를 새해 들어 히비스커스 꽃차로 바꾸었다. 이걸로 바꾼 이유는 고혈압 때문이었다. 매일 적당히 걷기 운동이나 가벼운 산행을 하는 데도 혈압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고지혈증도 없고, 몸무게는 정상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원인을 찾자면 스트레스 아니면 식습관 때문이란 말인데, 염분을 과다 섭취하면 물을 많이 마시게 되고 그 때문에 혈관이 팽창해져 혈압이 올라갈 수 있다나.

짠 음식은 질색인지라 이것도 요인에서 제외하면, 커피의 카페인으로 인하여 그럴 수가 있겠다 싶어 히비스커스를 찾게 되었다.

나이를 더 먹은 만큼 신체도 노화됐으니 혈압이 올라가는 거야 생리현상이라고 치면 될 일을, 지금에서 돌이켜 보면 이땐 이렇게, 저땐 저렇게,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지 않았느냐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 당시의, 그 신체 조건에서는 그런 식으로 대응한 요법이 맹탕 틀린 건 아니었겠지만. 이제부턴 신체 조건이나 현상에 목매지 말고 조용히 지켜보면서 극복해나가는 방식으로 살아야지 싶다. 관조하는 삶으로.

관조는, 희망을 버리고 세상사나 인연을 잊으려는 체념과는 다르다. 국어사전에서는 관조를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태도라고 하는데, 내가 말하는 관조는 테오리아(theoria)적인 삶을 의미한다. 피타고라스가 인간의 영혼에 대해 사용하였듯, 테오리아는 세상사의 모든 편견을 없앤 순수한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평정심 아닌가.

일생을 현실에 매달려 매일매일을 돈 걱정으로 살아왔고, 나이 들어서는 몸 걱정으로 사는 꼴이라니. 돈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돌기 마련이고, 신체도 나이를 먹으면 쇠락해지기 마련인 것을. 일희일비에 따라 인생을 살면 죽어서 지옥 가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걱정 지옥’에 갇혀 낙장거리 된다는 걸 왜 몰랐던가.

나이란 그 숫자만큼 세상에 다시 입문하는 것이니,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현상에 들뜨지 말고 편견에 갇히지 말자는 결심을 했다. 하여 커피를 줄이는 대신 차 종류로 바꾸면서도 과거에 마시던 오미자차로 돌아가지 않고, 비슷한 색감과 맛을 내면서도 원산지는 머나먼 터키인 히비스커스로 택했다. 약용효과도 있다곤 하나 그보다는, 관조하는 삶으로의 전환을 위한 보리수로 삼으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