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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상아 없는 코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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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모잠비크 내전은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잔혹한 전쟁이었다. 1977년부터 1992년까지 15년 간 10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고, 500만 명 이상이 삶터에서 쫓겨났다. 소년병 투입, 마을 테러, 강제 노동, 성폭행 등 온갖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됐다. 탈출한 부모의 아이를 토막내 죽이는 악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동물도 수난를 당했다. 내전 기간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코끼리는 2500여 마리에서 200여 마리로 90% 이상 줄었다. 내전 당사자들이 상아를 얻기 위해 코끼리를 집중 사냥하면서다. 그들은 상아를 판 돈으로 무기와 생필품을 구입했다. 얼룩말과 버팔로 등은 굶주린 사람들의 먹잇감이 됐다.

상아를 노린 인간의 코끼리 사냥은 진화의 방향마저 바꿔버렸다. 통상 암컷 코끼리의 96%가 상아(엄니)를 가지고 있다. 코끼리는 상아로 땅을 파고 나무 등 방해물을 제거하며 먹이를 구하거나 자신을 방어한다. 그런데 내전 후 상아 없는 코끼리가 50.9%로 늘어났다. 고롱고사 공원의 코끼리 복원 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현재도 무상아 암컷이 30%에 달한다. 미국 프린스턴대학 연구팀은 이에 대해 “사람이 큰 엄니를 지닌 코끼리를 집중적으로 선택해 죽인 결과, 엄니 없는 코끼리로 급속히 진화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2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서다.

무상아 코끼리로의 진화는 생태계에 변화를 야기한다. 코끼리는 상아로 나무를 쓰러뜨려 사바나(열대 초원)에 숲이 들어서는 걸 막는다. 하지만 무상아 코끼리가 증가하면 이런 일을 못하게 돼 사바나가 밀림으로 변할 수도 있다. 연구팀은 “코끼리는 핵심종이어서 이들이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전체 경관이 달라지는데, 상아 없는 코끼리가 늘어나면 생태계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무상아 진화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상아 사냥이 전 세계적으로 끊이지 않아서다. 세계자연보전연맹에 따르면 20세기에 아프리카 코끼리의 90%가 도륙당했고, 아시아 코끼리도 85%가 사라졌다. “태어나는 코끼리보다 밀렵되는 코끼리가 더 많다”고 한다.

무상아 코끼리는 코로나19, 기후위기와 닮았다. 압축성장에 치우친 20세기 반환경, 반자연적 문명의 부작용이라는 점에서다. 그 부작용이 코끼리에게서 상아만 앗아가겠는가. 이빨 빠진 사자가 백수의 왕좌를 잃고 굶어죽을 수밖에 없듯이, 코끼리라는 존재 자체를 지구상에서 몰아낼 공산이 크다. 공멸의 디스토피아가 차츰 가시화하는데도 전환점은 보이지 않는다. 진화하는 건 잔혹뿐인 듯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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