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팡이 냄새.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아이들 집에선 모두 같은 냄새가 났다. 지하도 아니었지만 방, 화장실, 주방까지 빼곡히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그래서 어느 집 할 것 없이 30분만 있으면 어김없이 목이 잠겨왔다. 알레르기 비염이 있는 나는 취재 내내 코를 훌쩍였다. 하지만 집 전체를 집어삼킨 곰팡이를 밀어내기엔 집 안으로 드는 볕은 너무 미약했다. 방 하나는 아예 창문이 없는 집, 창은 있지만 열면 바로 옆집 벽이 가로막고 있는 집, 심지어 집 전체에 창문이 하나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아침이고 밤이고 천장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가 후두둑 떨어져 구멍이란 구멍은 실리콘으로 다 막은 집도 있었고, 폭우와 태풍에 집이 무너지거나 뒤틀린 경우도 있었다. 폭우가 휩쓸고 간 후 벽에 금이 쭉쭉 간 집에 취재를 갔을 땐 혹시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들어가면 무너질까 걱정스러웠던 적도 있다.

화장실도 사치였다. 화장실이 없어서 옆집에 가는 아이, 있어도 너무 지저분해서 집 밖 공중 화장실을 쓰는 아이도 만났다. 매일 옆집 화장실을 가야 했던 13살 여자아이는 “밤엔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서 가는데, 무서워서 ‘지금 집 안에 있다’ 주문을 외운다”고 말했다. 이 아이의 꿈은 화장실이 방 안에 있는 집에서 사는 것이다. 재래식 화장실이 있는 집에서 세 아이를 키운 한 엄마는 “아이가 어릴 때 친구 집에 가서 수세식 화장실 사용법을 모를까 봐 조마조마 할 때가 있었다”고 했고 장애아를 키우는 또 다른 엄마는 “화장실이 고장났는데 고칠 돈이 없어 매일 아이를 업고 집 근처 공공도서관 화장실을 오갔다”고 털어놓았다. 1970, 80년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아파트 한 채 값이 10억 원을 오르내리는 2021년. 바로 부산에서,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있는 아이들 이야기다.

2년에 걸쳐 ‘10대의 빈곤’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14가구를 직접 찾아갔고, 30명이 넘는 아이들의 사연을 접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집 답지 못한 집’에서 살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산에선 약 5만1000명의 아이가 이처럼 주거 빈곤 환경에 놓여 있다(2015년 기준).

주거 빈곤 아동들은 대부분 열악한 주거환경이 가져온 부수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토피나 비염과 같은 기저질환을 달고 사는 건 예사다. 다른 사람에게 집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워 심리적으로 위축되는가 하면, 책상 놓을 공간도 제대로 없다 보니 학업 성적이 엉망인 경우도 많다. 초등학생 두 동생과 엄마까지 4명이 한방에서 생활하는 정현이(가명)는 시험 기간이 되면 모두가 잠드는 새벽 1시쯤 다시 일어나 가림막으로 스탠드 불빛을 가린 채 공부한다고 했다. 아이들은 특히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로 집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더욱 길어지면서 어려움도 더 커졌다고 입을 모았다.

첫 기사를 쓴 지 2년이나 흘렀지만 주거빈곤 아동을 위한 맞춤형 대책 마련은 사실 아직도 더디기만 하다. 국제신문의 지적에 따라 제정된 ‘부산시 아동 주거빈곤 해소를 위한 조례’가 올해 1월부터 시행됐지만 정작 실태조사 등에 필요한 예산은 내년에야 배정될 예정이다. 주거빈곤 아동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다. 지난 5월엔 주거복지센터도 2곳이 문을 열었으나 주거 빈곤 아동 가정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정책 자체가 마련되어있지 않은 상황이라 제대로 된 안내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무엇보다도 지자체가 주거 빈곤 아동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점이 가장 아쉽다. ‘아동친화도시’ 타이틀을 내건 부산시가 다른 지자체와 차별화된, 어떤 특화된 정책을 펴고 있는지 잘 모르겠기에 하는 말이다. 주거빈곤 아동 지원 우수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경기도 시흥시는 가구원 중 만 18세 미만 아동이 포함되어 있으면 주거비·집수리비를 30% 더 지원한다. 말 그대로 주거빈곤 아동 가구를 위한 맞춤형 지원 사업이다. 부산시가 지금이라도 ‘아동친화도시’에 부끄럽지 않은 주거빈곤 아동 지원 정책을 내놓을 지 지켜볼 일이다. 이것조차 안한다면 ‘아동친화도시’ 타이틀은 반납하는 걸 권한다.

디지털콘텐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