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네 차례, 열 번의 접전에서 번번이 승첩을 거두었으나 장수들의 공로를 논한다면 이번 부산싸움보다 더 큰 것이 없었습니다. 전에는 적선의 수가 많아 봤자 70여 척을 넘지 못했사온데 이번에는 적의 소굴에 470여 척이 늘어선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뚫고 들어가 하루 종일 공격해 적선 100여 척을 격파했습니다. 그래서 적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해지고 목을 움츠리며 두려워서 벌벌 떨게 했습니다. 비록 적의 머리는 베지 못했을지라도 힘써 싸운 공로는 지난번보다 훨씬 더 컸습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부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올린 장계의 내용이다. 부산포해전에서 승리하기 전 충무공은 옥포 당포 한산도에서 연이어 승리했다. 특히 충무공의 3대 대첩 중 하나이자 세계 4대 해전 중 하나인 한산대첩과 비교해 공로가 더 컸다고 충무공이 직접 밝힌 대목을 주의 깊게 보지 않을 수 없다. 왜적 3000여 명을 수장했고 총대장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겨우 목숨을 건져 김해 쪽으로 달아난 전과를 올린 점이 한산도해전을 대첩으로 부르게 했다. 학익진을 펼쳐 해전사에 길이 남은 한산대첩에서도 격파한 적선의 수는 59척이었다. 부산대첩은 이보다 배나 많은 100여 척(부산포해전)이니 그 승리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수군에 있어 전선은 싸움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산대첩은 이미 기세가 꺾인 왜군이 충무공과 정면 대응을 피하고 부산포 인근 육지에서 우리의 대포와 자기들의 조총으로 응사해 충무공은 적의 수급을 벨 수 없었다. 부산대첩의 위대한 점은 충무공이 연합함대를 구성해 거북선 2척과 판옥선 74척을 이끌고 왜군의 본진이 있는 심장부 부산을 공격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산포에는 470여 척의 왜선과 8000여 명의 적군이 주둔했다. 한산도는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서 이틀에 걸쳐 도착했으나 부산포는 무려 6일이 걸릴 정도로 멀고 힘든 싸움이었다. 이 정도 기간이면 군수와 식량만 해도 한산도해전의 3배가량 되는 규모다. 싸움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가장 아끼던 부하장수인 정운 녹도만호(우부장)가 적의 탄환에 맞아 목숨을 잃었겠는가. 부산대첩으로 조선 수군이 남해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부산 주둔 사령관은 이날의 패배로 홧병을 얻어 숨졌다고 한다.
이런 대승을 부산에서 했는데 정작 이를 잘 아는 부산사람은 드물다. 필자도 오랫동안 충무공 연구에 공을 들인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에게서 이를 듣기 전에는 자세한 사항을 알지 못했다. 현재 이를 기념하는 유물이나 자료가 드물다. 서구 대신공원에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가 있고 동명으로 서구 충무동이, 사하구 다대포에는 ‘정운공순의비’가 있을 따름이다. 영모비는 원래 일제가 서구 충무동 일대를 매립하고 세운 ‘남항매축공덕비’였다. 충무동경로회가 1957년 일제 잔재를 없애려고 이 공덕비의 글씨를 파내고 우리나라 지도 모형으로 만들어 그 위에 ‘충무공 이순신 영모비’를 새긴 것이다. 1960년 충무동 교차로 확장공사로 교차로에 있던 영모비를 당시 서구 남부민동에 있던 해양고로 옮겼고, 이후 해양고가 1992년 5월 학교를 이전하자 그 해 9월 대신공원 입구로 이동했다.
다행스럽게도 부산시민의날이 부산대첩 승전일을 기념해 제정했다. 손재식 전 부산시장이 1980년 충무공의 부산대첩일인 10월 5일을 기념해 부산시민의날로 삼았다. 1592년 음력 9월 1일이 대첩일인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0월 5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민 여론을 수렴한 결과 부산포해전 승전일 외에도 ▷동래부사 송상현공 순절일(5월25일) ▷부산항 근대 개항일(2월27일) ▷부산부에서 부산시 승격일(8월15일) ▷부산시민헌장 제정일(8월1일) ▷부산직할시 승격일(1월1일) 등이 거론됐다. 문화위원회에서 격론이 벌어져 결론을 내리지 못해 비밀투표까지 한 뒤에야 부산대첩일을 택하게 됐다. 같은 해 9월 10일 확정해 공포했다. 여담이지만 손 전 시장의 아들이 부산에 본사를 둔 한국거래소의 손병두 이사장이다.
김 전 재판관은 부산대첩의 의의를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의 역사 중 하나다. 그래서 부산은 위대한 호국의 성지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산대첩을 부산의 자존심으로 삼아 이를 적극 알리고 그 정신을 키워야 하나 그동안 부산시민의날만 정하고 다른 것은 없다고 안타까워 했다. 북항 연안 도로의 이름을 부둣길이 아니고 부산대첩로로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북항에 부산대첩을 알리는 기념관이나 공원, 대첩비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 부산시가 시민의날에 북항 바다에 거북선을 띄워 430년 전의 대승을 기념하는 축제를 열면 어떨까. 기념식 위주의 행사가 아니라 그날을 소재로 고급 문화행사를 연다면 부산은 품격 있는 문화도시가 될 것이다.
편집국 부국장 namu@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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