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은 계절이다. 엄정한 코로나19 사태 속에 무슨 속 편한 말이냐고 할 수 있겠으나, 특히 부산의 10월은 세계 어디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다. 자연이 베푼 은혜를 만끽하듯 시민 활동도 다양하다. 간판 행사인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으로 세계적인 관심이 쏠리는 게 그 예다. 가을이 무르익는 가장 ‘부산’스러운 계절, 10월이다.

하늘은 높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도 좋으니 산으로 들로 시민 발길이 이어진다. 해운대 장산에 올라 표지석 근처서 영화제가 진행되는 해운대 곳곳을 내려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친 걸음에 금정산 고당봉과 가덕도 연대봉을 빼놓을 수 없다. 이에 더해 9개 코스 21개 구간 278.8㎞인 갈맷길을 걸으며 부산 속살을 확인한다면 금상첨화겠다. ‘2021 갈맷길 원정대’가 전 구간 완주 대장정을 벌이고 있다.

고당봉과 장산, 그리고 연대봉을 콕 짚은 이유는 이 세 곳을 연결하는 삼각형이 부산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방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두대간이 뻗어내려온 고당봉에선 부산 중심부를, 장산에선 태평양으로 연결되는 바다를, 연대봉에선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다. 산·강·바다를 품은 삼포지향(三抱之鄕) 부산을 느끼고, 부산 사람임에 자부심을 가지며, 부산을 사랑하는 바탕이 여기서 비롯된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부산에서 기관장을 하는 타지인, 그 중 대부분인 서울 출신 인사들에게 생활하는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부산을 제대로 알고 싶다면 꼭 세 곳을 가보라고 권했다. “당신들이 복잡한 서울 지하철 환승역에서 헤매지 않는 이유가 뭐냐? 서울에서 나고 자라며 체득한 지리 감각 덕분 아니냐? 부산 트라이앵글이 머릿속에 있으면 부산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는 말과 함께.

아쉽게도 세 곳을 모두 돌아봤고, 덕분에 도움이 됐다는 소리를 듣진 못했다. 하는 일이 바빴거나, 이 말을 흘려 들었거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거나, 그 사람들 사정을 알 수는 없다. 유독 기억에 남는 건, “부산의 무엇이 좋아요?”라거나 “부산하면 이것이지요!”라는 말은 많이 들었으나 “부산에서 어떤 점이 불편하신가요?”하는 질문을 받아보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타지인의 시선에서 본 부산, 그 속엔 분명 부산 사람 생각과 다른 부산의 문제와 부산의 미래를 위한 과제가 담겨 있을 터이다.

좋은 계절이라고 할 일을 미룰 순 없다. 가을은 결실과 수확의 계절일 뿐만 아니라, 서릿발 같은 결단의 계절이자 의로움이 조화를 이루는 계절이라고 ‘주역’은 강조한다. 코로나19 사태의 터널을 벗어나야 하며, 내년 3월 새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특히 내년 6월 지방선거는 지방권력의 향배를 가름하는 중요한 계기다. 이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마는 대선 정국에, 코로나 시국에 묻혀 정작 부산의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데 소홀함이 없는지 조바심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부산시장은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의 대선 경선 후보들이 부산 민심을 잡겠다며 내놓은 공약은 아직까지 실속 없는 말의 성찬에 그친다. 부산 울산 경남을 연결하는 메가시티 구현, 가덕신공항 건설, 북항 재개발 추진, 2030부산월드엑스포 유치 등 지난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와 판박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둘러싼 ‘대장동’·‘고발 사주’ 의혹은 그나마 정책 대결의 여지마저 뭉개버리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여야 대선 후보가 결정되는 다음달 초순에야 ‘지방선거의 장’이 마련될 것이라며 속절없이 시간을 보낼 상황이 아니다. 부산을 바꿀 어젠다 설정과 구체적인 방안으로 시민을 설득하고 표를 구하기에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당장 큰 변수가 생겼다. 부산지검이 박형준 부산시장을 공직선거법 위한 혐의로 불구속기소함에 따라 박 시장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재판을 받게 됐다. 유력한 후보의 기소로 여야 모두 부산시장 후보 선택을 위한 고차함수를 풀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박 시장이 보궐선거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내년 시장 선거전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시 떠올랐고, 대선 경선 후보들이 재탕한 이슈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잘 엮고, 실천적 대안을 내놓느냐는 싸움, 즉 디테일의 차이가 표와 직결된다는 의미다. 공부하고 토론하며 시민이 고개를 끄덕일 대안을 내놓아야 할 책임이 후보들에게 있다. 넓고 깊은 고민에, 타자의 시선과 부산 미래를 조망하는 비전까지 더해서. ‘1일1실언’이란 유행어에도 꿋꿋한 대선 경선 후보와 닮은 이를 부산시장 선거판에서 보고 싶지는 않다.

지방 소멸과 삶의 질이 화두다. 후보와 유권자 모두 부산 미래를 위해 더 공부하고, 더 활발하게 논의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겉보기에 급하고 시끌벅적하다는 원뜻에 실속을 더해 10월이 부산스러워야 하는 이유다.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