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집권 자민당 기시다 후미오 총재가 어제 새 총리로 선출됐다. 일본의 제100대 행정부인 기시다 총리 내각이 출범한 것이다. 기시다 총리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으로 경제를 되살려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누면서 자민당 정권 재창출을 이끌어야 한다. 이런 일을 자청한 이웃 나라 지도자라면 따뜻한 축하 인사를 건네야 당연하겠으나 과거사 문제 등으로 꼬일대로 꼬인 한일 관계를 볼 때 걱정을 떨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아베 정권 시절 4년8개월가량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총리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2015년 한일 합의문에 서명한 당사자이다. 일본 정부의 기본 입장을 고수해선 양국 관계의 발전을 꾀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둔다.

눈앞에 보이는 큰 변수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기시다 총리의 내각 인선 내용이다. 그는 자신을 뺀 내각 구성원 20명 중 13명을 각료 경험이 없는 인물로 채웠다. 일본 언론은 “쇄신 이미지를 내세울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나 극우파 기용 등 우려스러운 대목이 적잖다. 유임되는 기시 노부오 방위상이 아베 전 총리의 친동생이고, 아베 전 총리의 최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가 경제산업상을 맡으며, 역사 왜곡을 선동한 마쓰노 히로카즈가 총리관저의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는 관방장관을 차지한 것이 그 예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수장인 자민당 5위 파벌인 기시다파는 물론, 아베 전 총리가 이끄는 최대 파벌인 호소다파, 2위 파벌인 아소파 등의 고른 지지로 자민당 총재가 된 만큼 새 내각도 철저하게 주요 파벌에 자리를 나눠주며 정국 안정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풀이된다. 자민당 실력자인 아베 전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재의 그림자가 그만큼 짙은 셈이다. 이는 기시다 총리가 비둘기파로 분류되지만, 한일 관계에 부담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두 번째는 오는 31일 치러질 총선이다. 일본 언론은 기시다 총리가 오는 14일 중의원을 해산하고 31일 총선거를 하는 일정을 추진한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 국면이고 새 내각 출범에 대한 기대로 여당이 유리할 때 유권자의 판단을 받겠다는 전략이란다. 2017년 10월 이후 4년 만에 실시되는 이번 총선은 기시다 총리의 정치 운명을 좌우하는 첫 고비다. 자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승리할 경우 기시다 총리는 특별국회의 재지명을 거쳐 제101대 총리로 연임하고, 그렇지 못하면 단명 총리로 끝날 수도 있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과의 안보협력을 강조해 왔던 점에 주목한다. 북핵 대응과 중국의 부상 등 동북아시아 안보환경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과거사를 털고 새로운 협력 관계로 발전해야 가능한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한일 관계의 밑바닥을 다져 더 이상의 악화를 막는 한편 강제징용, 위안부, 교과서, 독도 등 해묵은 과거사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미래를 위해 힘을 모으는 계기를 마련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