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을 돌아보면 “엄청난 유동성이 넘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해 여름엔 6%대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나왔고, 가을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가 터지면서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했다. 그런데, 그 때는 시중에 돈이 얼마나 많이 풀렸을까. 미국 기준으로 당시 약 7조 5000억 달러의 시중 통화량(M2)이 통계로 기록돼 있다.

그렇다면 ‘유동성 파티 끝판왕’으로 불리는 2021년 현재 미국에는 얼마나 많은 돈이 풀렸을까. 올 2분기 기준 20조 달러가 넘는다. 그러니까, 그렇게 돈이 넘쳤다는 2008년에 비해 거의 3배 가까운 양의 달러를 찍어냈다는 이야기다. 미국이 이 정도라면 세계 각국도 2008년 이후 13년 동안 당시 대비 2.5~3.5배의 돈들이 시중에 더 풀렸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렇게나 많은 돈들이 풀렸건만 그간 인플레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실물경제엔 돈이 거의 유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최근에야 우리나라도 5개월 연속 2.4%를 넘고, 미국도 5, 6%대 소비자물가상승률이 나오고 있지만 이건 아직도 일명 ‘기저효과’로 취급받고 있다. 작년 이맘때 코로나19로 워낙 경기가 안 좋았기에 그 때 대비 물가가 오른 것처럼 착시효과가 나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13년 동안 이 넘치는 돈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채권시장에, 부동산 시장에, 주식 시장에, 원자재 시장, 코인 시장 등으로 속속 유입됐고, 그 결과 이들 자산 가격을 ‘무자비’하게 쳐 올렸다. 넘치는 물을 수로에 쏟아붓지 않고 각 자산시장 ‘양동이’에 다 비축을 해놓았다는 것. 돈이 3배 풀렸으니 자산가격도 3배나 올랐다. 1000포인트가 깨졌던 코스피는 3000포인트를 넘었고, 7억 원대까지 떨어졌던 은마 아마트는 20억 원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기저효과’라고 하고, ‘일시적’이라고, ‘절대 없다’고 하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적군(敵軍)이 코 앞까지 들이 닥쳤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가 떨어지는 것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수중에 돈이 마른다는 뜻이 된다. 가령 8000원하는 설렁탕을 먹으려면 1만 원이 있어야 하고, 50만 원이면 충분했던 식비가 이젠 70만 원 넘게 필요하게 됐다. 이래저래 150만 원 정도면 충분했던 한 달 생활비가 300만 원을 준비해도 펑크가 날 판이다. 그렇다. 우리가 실질적으로 느끼는 인플레이션은 이런 ‘부족함’ 인 것이다. 수중에 있는 현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똑같은 월급을 받았는데 큰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물론 월급이 오르고, 가계소득이 인플레만큼 증가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그렇지만 과거 역사상 인플레이션 구간에 이런 적은 거의 없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바로 돈을 비축해놓은 자산시장 양동이를 하나씩 깨는 일이다. 거기에 담겨진 돈으로 실생활 속 돈의 부족함을 해결해 나가는 것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부터 우린 자산시장의 양동이를 깨야만 한다. 인플레이션은 확정적이다. 한국은행은 이미 금리를 올렸고, 유럽과 영국도 긴축을 시작하고, 미국도 연내 테이퍼링과 빠르면 내년 금리인상을 천명했다. 인플레이션을 인정한 방증이다. 난 가장 먼저 깨질 양동이를 ‘코인시장’으로 본다. 세계 코인시장 규모가 약 2조 달러라면 이 양동이를 깬다면 가격 급락을 감안해도 1조 달러 이상의 유동성을 실생활에 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된다면 실물경제에서 돈은 계속 부족하고 또 하나의 양동이를 깨야 한다. 아마도 ‘부동산 양동이’가 될 것 같다. 그 다음으론 주식 양동이를 깰 것이고, 동시에 채권시장 양동이도 무너질 것으로 예상해본다. 마지막은 원자재 시장이다. 원자재 가격은 인플레이션과도 관계가 깊은데 원자재 가격이 무너지면 ‘공황’이 시작될 것으로 본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완만하다면 굳이 양동이를 깨지 않아도 된다. 양동이를 깨지 않고 그 안에 든 유동성만 바구니로 퍼오면 되니까. 하지만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진다면 이 ‘양동이 깨기’는 생각보다 더 빨리 이어질 수 있다. 올 가을 코인시장이 무너진다면 양동이 깨기에 적극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경제 칼럼니스트·진 투자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