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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경제 항산항심] 가족의 장소 /엄길청

  • 엄길청 미래경영학자
  •  |   입력 : 2021-08-30 19:36:57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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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예방의학자는 이제 ‘위드(with)코로나’로 전환할지도 모른다는 어두운 전망을 내비쳤다. 정말 살다가 이런 날벼락은 처음 보는 사변(incident)이다. 어느 누구라도 붙잡고 따져 묻고 원망하고 싶지만, 상대가 없는 코로나의 참극은 그칠 기미가 없다.

국제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팬데믹 초기에 코로나가 창궐하면 성곽도시(walled city)의 출현이 예상된다고 진단한 바 있는데, 코로나 이후 돌연 선진국 대도시의 주택 가격이 줄이어 폭등했다.

그런데 서울의 지난 6월 아파트매수자 중에서 20대 이하가 차지하는 비중이 5%가 넘었으며, 특히 종로는 9%, 강남은 8%가 넘어 통계를 낸 후 가장 높은 비중을 보였다. 이처럼 코로나 이후 느닷없이 지구촌의 집값이 들썩이고, 젊은 이도 집 사기에 관심이 커졌다.

영국의 인기 드라마 ‘다운트 애비’는 큰 저택 안에서 벌어지는 신분사회의 집안 이야기로 장수한 프로그램이다. 저택의 위층에는 귀족이 살고, 아래층은 하인이 살고, 마을에는 중산층이 사는 환경에서 재산의 상속과 근친결혼을 둘러싼 가족의 삶을 그린 드라마이다. 드라마는 실제로 버크셔의 하이클레어성에서 찍었는데 17세기에 지은 이 성은 지금 살고 있는 커너번이란 백작부부가 소유하는 집이라고 한다. 1년에 관리비만 150만 달러가 든다.

그 드라마에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아들이 없어 사촌과 결혼하면서 성을 물려받게 되는 손녀에게 할머니는 이 결혼은 “가족의 장소”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타이타닉호의 침몰로 아들을 잃은 귀족 집안의 에피소드로 출발한 드라마이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불현 듯 이 드라마에 생각이 스친다.

벌써 모두가 집 밖을 마음대로 나다니지 못한 지도 2년을 곧 헤아린다. 그러는 동안에 작은 아파트를 선호하던 분위기에서 다들 형편이 되면 조금 넓은 실내공간을 장만하려고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런가 하면 증시에서는 정보와 상거래플랫폼을 위시하여 문화 소비 유통 물류 게임 등의 주식이 크게 올랐다. 주로 집안에서 소통하고 주문하고 소비하고 게임하는 것을 반영한 탓이다.

요즘 세계는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수출 주문이 호조세이다. 유럽에서도 이름 있는 명품의 문화소비재가 많은 나라이지만, 평소에는 그리 주문이 활발하지 않는 나라인데, 미국의 재택경기가 살아나는 것과도 일정한 관련이 있다. 중국 등 근로자 소비가 주도하는 주문과는 결이 다른 대도시의 여유 계층 가족소비가 두드러지는 장면이다. 이들은 주택에도 부유층 가족 매수의 가격 주도력이 확연하다.

소득이 남다르게 높은 나라는 대개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원의 축복을 받는 나라이고, 하나는 다른 나라의 부자가족이 모여 사는 나라이다, 노르웨이나 덴마크는 전자이고, 캐나다는 둘을 혼합한 나라이고, 룩셈부르크 스위스 싱가포르는 후자이다. 후자는 세계의 부유한 가문의 가족이 모여 살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놓은 도시이다.

한 때 부산은 가난한 가족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서로 의지하며 터전을 삼던 희망이 큰 도시였다. 가족이 늘어나고, 집을 장만하고, 학교를 가고, 결혼도 하고, 직장도 잡았던 도시였다. 부산은 바로 도시 전체가 ‘가족의 장소’란 대명사가 손색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창원과 울산이 산업도시로 커가는 동안 부산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무심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다고 울산과 창원도 그동안 가족의 장소로서의 도시 저력을 제대로 키우기에는 너무 짧은 영광이고 이미 흘러간 시간이다. 코로나 종식이 쉽사리 희망을 주지 않는다면 동남권의 현실은 서로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부산 울산 창원이 하나가 되어 부울경이 함께 도전하는 ‘가족의 장소’로 힘을 기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지역경제의 현안이 많이 있지만, 깊어가는 코로나의 생채기를 아물게 하고, 다시 미래의 희망을 심기 위해서 무엇보다 일자리 결혼 출산 주택에서 젊은 정책이 가장 우선적으로 수립돼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침 추수 뒤에 오는 전통의 결혼 시즌이 곧 온다. 주변의 혼사 소식에 마음을 다해 축하를 보내자.

미래경영학자·전 경기대 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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