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의 분권·균형발전 담당기관 이름은 국토평등위원회(CGET).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평등’은 유럽도 마찬가지다. 1960년대에는 ‘프랑스에는 파리가 있다. 나머지는 사막이다’는 자조 섞인 말도 있었다.

최근 우리 정치권에서 ‘평등 논쟁’이 불 붙었다. 더불어민주당 대권후보인 이재명 경기지사가 ‘소득 상위 12%에게도 재난지원금을 지급한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낙연 후보 캠프는 세 차례 비판 논평을 냈다. “포퓰리즘 선거운동이자 독불장군식 매표정치” “재난지원금이 국민의 위로가 아닌 국민의 갈등이 됐다”…. 다른 시도와의 형평성을 제기한 것이다. 정세균 캠프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역”이라는 날선 단어를 썼다.

이재명 캠프는 예상이라도 한 듯 ‘지방자치론’ 카드로 반격에 나섰다. “지방정부의 자율권을 문제 삼는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역행” “정세균 후보도 국무총리 시절 (재난지원금을) 전 국민 대상으로 지급하자고 말했는데 재정당국의 저항을 뚫지 못했다.” 오히려 추미애 후보는 “국무총리까지 지내신 두 분(이낙연·정세균)이 재난지원금 갖고 계속 그러는 것은 말이 좀 안 된다”며 이 지사를 옹호했다.

여의도 비평가들은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지사의 이슈 선점 능력이 탁월했다”고 촌평했다. 기본소득·기본주택에 이어 이 지사가 만든 프레임에 경쟁자들이 걸려 들어 스피커 역할을 했다는 의미.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할수록 ‘코끼리’가 생각나는 것처럼 유권자들은 재난지원금 논란이 뜨거워질수록 ‘이재명’만 떠올릴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서 의문 하나. 만약 이 지사가 부산시장이었다면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실행할 수 있을까. 통계를 보자. 소득 상위 12% 범주에 포함되는 경기도민은 부산 인구(337만 명)의 절반인 약 166만 명. 1인당 25만 원씩 지급에 4150억 원이 필요하다. 부산이 경기도 흉내를 내려면 약 1000억 원을 확보해야 한다. 재정자립도가 서울(80.6%)이나 경기도(63.7%)보다 13%~30.8%포인트 뒤지는 부산(49.8%) 입장에선 큰 부담. 재정자립도가 30%대인 원도심(서·중·동·영도구)과 서부산권 자치단체는 재난지원금 분담 비율 10%조차 버겁다.

일반적으로 재정자립도가 30%대면 공무원 월급주면 곳간이 빈다. 40%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국비를 받지 못하면 새 프로젝트는 언감생심. ‘부산시장이 1년간 주무를 수 있는(신규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이 3000억~4000억 원대에 불과’하다는 말은 과장된 게 아니다. 매년 비수도권 언론이 “사상 최대 국비를 확보했다”거나 반대로 “국비가 삭감돼 비상이 걸렸다”고 대서특필하는 이유다. 결국 이 지사가 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을 주장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경기도지사’이기 때문.

재정자립도 50% 이상인 광역시·도는 서울·경기·인천과 세종·울산뿐이다. 전남·북과 경북·강원은 20%대. 살림이 넉넉치 못한 곳일수록 ‘소멸 시계’의 초침이 빠르다. 감사원이 최근 통계청 고용정보원과 함께 인구 변화를 추산했더니 부산 인구는 2067년 191만 명으로 감소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2만7588명 줄었다. 이 중 절반은 수도권으로 유출됐다. 제2도시의 사정이 이렇다. 개인뿐만 아니라 동네별 격차도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증거.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이 ‘균형발전’이라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그런데 현실에선 늘 후순위로 밀린다. 대권주자 중 분권 공약을 제대로 내놓은 후보는 손에 꼽을 정도다. 경남지사 출신인 김두관 후보가 캠프를 부산에 마련한 것이 가장 눈에 띌 정도. 부산·울산·경남 민심 탐방에 나선 후보들은 “가덕신공항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는 말만 하고 돌아간다. ‘대형사업 하나 줬으니 되지 않았느냐’는 뉘앙스마저 풍긴다. 장기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공공기관 추가 이전’ 같은 재탕삼탕 정책을 나열하는 후보도 상당수.

사실 균형발전은 지구촌 거의 모든 나라의 숙제다. ‘모범’이라고 평가받는 프랑스도 40년 이상 해법을 찾는 중이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집권한 사회당(1981~1995) 제1기를 거쳐 재정분권 시스템을 정비한 자크 시라크·니콜라 사르코지 집권 기간인 제2기를 지나 지방자치단체 개혁법(2010년)을 근거로 지방정부 권한을 확대하고 있는 현재까지. 스위스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방정부의 세원(6.5)이 연방정부(3.5)를 앞질렀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7 대 3에도 못 미친다.

대권 주자들에게 요구한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비수도권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차별 받는 비정상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하라. 재정자립도 격차 완화를 공약하라. 분권과 균형발전 없이는 인구가 줄어도 집값은 폭등하는 위기를 결코 돌파할 수 없다.

디지털국장 ns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