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부산탑에 관한 짧은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23ｍ 높이의 부산탑은 1963년 부산이 직할시로 승격된 것을 기념하여 서면 로터리에 세워졌다. 백색 아치형의 탑신은 부산의 ‘부’ 자를 곡선으로 형상화했으며 상부에는 오륙도가, 중앙에는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의 모습이 동상으로 형상화되었다. 이후 18년 간 서면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다가 1981년 도시철도 1호선 공사로 인해 탑신은 철거되었으며 중앙의 남녀 동상만 시립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안치되었다.

필자 역시 부산탑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지금은 교차로가 되어버린 서면 로터리를 돌 때면 차창 밖으로 흰 탑신이 180도 회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시 버스에 탄 승객들이 그랬던 것처럼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도 대개는 무심하게 탑을 지나쳤던 기억이 난다. 서면 로터리는 미숙한 운전자들에게는 특히 가혹한 시험대였다. 누군가가 로터리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섯 바퀴를 돌았다느니 혹은 열 바퀴를 돌았다느니 하는 소리를 어른들로부터 엿들은 경우도 몇 번이나 있었고 한 번 만에 로터리를 빠져나오는 버스 기사들을 보며 운전 실력이 참 대단하시구나 속으로 감탄한 적도 있었다. 부산탑이 사라진 후의 서면 로터리 모습은 어린 필자에게도 생경하고 허전했다. 로터리가 교차로로 변한 후 오랫동안 교통신호를 기다리게 된 것도 성질 급한 필자에게는 별로 반가운 변화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도시철도 노선이 로터리 아래를 통과하게 되면서 부산탑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공사를 수행했던 관계자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었지만 당시 기술로는 탑을 그대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다시 제자리로 복원시킬 수 없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철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지하철 공사로 인해 탑이 철거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본 모습 그대로 온전하게 보존되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서 도시의 조형물들이 그 상징적 의미가 퇴색하거나 오랜 기간 방치되어 흉물로 전락한 뒤 허무하게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가까운 울산의 경우 부산탑을 세운 경력이 있는 건축가에 의해 1967년 공업탑이 세워졌는데 2010년 도색작업을 비롯한 대대적인 정비사업을 거쳐 지금까지도 건재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부산탑 또한 도시철도 공사와 같은 대규모 역사(役事)가 없었더라면 꾸준한 보수·정비 작업을 받아가며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나무를 베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던 현명한 나무꾼처럼 세월의 풍상을 견딘 오랜 건축물들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그러나 그 건축물이 단순히 오래된 구조물인지 중요한 역사적 함의를 가지는 기념물인지에 따라 그것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적인 기념물인 경우에도 그 역사가 당대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따라 운명은 달라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한때 중앙청으로,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가 1996년 전격 해체된 조선총독부건물일 것이다. 해체를 바라본 동시대인으로서 필자는 우리 정부의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대가 이를 어떻게 바라볼지는 다른 문제다. 기원전 16세기 하트셉수트 여왕의 기념물을 파괴했던 투트모세 3세도 자신의 결단이 옳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국 전역의 수많은 신전과 조각상을 파괴했던 기원후 4, 5세기 기독교 로마의 황제들과 시민도 그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들은 바미안 석불을 파괴할 때 “알라후 악바르”(신은 위대하시다)를 외쳤다.

부산탑을 이야기하다가 너무 멀리까지 간 느낌이다. 필자의 의도는 일제에 의해 악의적으로 조성된 조선총독부를 정부가 오랜 심사숙고 끝에 해체한 것을 탈레반이나 ISIS와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인류의 문화유산을 무참하게 파괴하는 것과 비교하는 데 있지 않다. 올해 7월 2일 유엔무역개발회의는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다. 우리가 실감하기 전에 밖에서 우리를 선진국으로 인정한 것이다. 물론 산적한 문제도 많고 개선해야 할 것도 산더미 같다.

그러나 필자는 미래에 시선을 고정하면서도 한 번쯤 뒤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산탑과 같이 우리가 앞만 보고 정신 없이 달려갈 때 이런저런 이유로 가뭇없이 사라져간 것들도 한 번쯤은 상기해보자, 한때 그들과 함께했던 당대의 증인으로서. 아주 가끔씩 우리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듯.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강의교수·이집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