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일과 놀이를 대립적인 개념으로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과 관련이 있는 활동과 일을 제외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활동’이란 백과사전의 놀이 정의가 그것이다. 하지만 실제 일과 놀이는 동전의 양면처럼 한몸을 이루고 있다. 일할 때 부르는 민요인 노동요를 보면 알 수 있다. 노래를 부르는 놀이가 없으면 고되고 지루한 일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 놀이는 일의 능률을 높이는 생산 촉진제이기도 하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그래서 “인간은 놀이를 즐기고 있을 때만 완전한 존재”라고 했다. 네덜란드의 역사·문화학자 요한 호이징가는 ‘노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개념을 통해 놀이가 문화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로저 카이유는 놀이를 경쟁·우연·역할·현기증 등 속성으로 구분했다. 경쟁은 사냥이나 운동경기 같은 승부 가리기를, 우연은 주사위 놀이나 카드 게임처럼 운에 의해 결정되는 놀이를 말한다. 역할은 연극 같은 가상인물 설정을, 현기증은 회전목마 등 기구를 이용한 놀이를 일컫는다. 꽃싸움이란 예쁜 뜻을 지닌 화투(花鬪)는 우연의 놀이에 속한다. 화투는 남한은 물론 북한에서도 즐긴 놀이였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 탈북자는 중국 팔로군 출신의 연안파와 김일성 쪽 갑산파의 갈등을 얘기하며 “(두 파벌의 장교들이) 전쟁 중에 시간이 나면 화투놀이를 했고, 그러다 싸우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전쟁터에서, 그것도 반목하는 사람과 놀이를 즐겼다니, 노는 존재라는 인간 특성이 이보다 잘 드러나는 사례가 있을까 싶다.

놀이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엄혹한 상황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한 병원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입원한 할머니와 마주앉아 화투놀이를 하는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와 화제다. 코로나에 감염돼 격리병실에 수용된 할머니가 적적해하자 간호사가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해 화투로 꽃그림 맞추기를 했다고 한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듯한 폭염 속에 방호복을 입은 당사자는 얼마나 괴로울까. “경외심을 느낀다” “의료진이 마음도 치료해주는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는 등 찬사가 쏟아진다.

사진은 삶의 진실을 일깨운다. 일과 놀이가 하나이듯, 위기와 놀이도 별개 관계가 아니다. 위기가 심해질수록 서로 위로해주는 따뜻한 마음이 필요하고, 놀이는 그 마음을 담은 가장 요긴한 수단이다. 놀이를 통해 잠시 시름을 내려놓는다. 코로나는 놀이와 유대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