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꽃잎이 아니라구요?”

“네, 꽃잎이라고 알고 계신 그 부분은 꽃받침이예요. 꽃은 여기 작은 부분.”

술렁이기 시작했다. 다들 믿기지 않는 눈치다. 지금까지 꽃잎인줄 알던 것이 꽃받침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니!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것만큼 실망하는 눈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국이다.

“그동안 꽃잎인줄 알았어요. 속았네요.”

향기가 없는 수국은 벌과 나비들을 불러들이는 방법으로 가짜 꽃잎을 사용했다. 꽃받침을 화려하게 만들어 작은 꽃을 대신한 것이다. 이는 수국의 속임수일까?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을까?

“그렇다면 꽃은 어디 있는 거예요?”

“여기, 중앙에 있는 작은 좁쌀같은 것 보이시죠?”

다시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세상에, 정말 작네요.”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벌과 나비도 수국의 그럴듯한 꼬임에 넘어갔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 본 순간 알았을 것이다. 수국의 진짜를.

수국은 초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아이 머리만큼 커다란 크기로 꽃을 피운다. 종류도 다양하고 색상도 아름다워 화단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고 가을이 되기까지 색을 바꿔가며 오래도록 피어있기까지 한다. 몽실몽실한 꽃 머리를 만지면 탱탱하게 물이 꽉 차오른 것처럼 탄력있다. 수국의 머리를 손바닥 전체로 토닥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꽃을 보고 누가 반하지 않을까.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수국이라는 꽃에 ‘더 아름다운’이라는 욕망을 투사하고 다양한 색과 꽃잎을 가진 원예용 수국을 탄생시켰다. 특히 일본에서 개량종 원예수국을 많이 재배했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생식능력이 없는 꽃이다. 모양과 빛깔이 극도로 아름다워지기는 했으나 스스로의 힘으로 생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꽃이 된 것이다. 그러나 야생에서 자라는 제주의 탐라 산수국은 다르다. 수국 꽃의 바깥 쪽 일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수국의 모양처럼 꽃받침이 크게 자라 있고 중앙 부위에는 작은 꽃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꽃이 피었던 그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데 나는 특히 이때를 좋아한다. 싱그러운 여름 그 자체다.

이렇게 수국의 꽃이 작고 볼품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수국에 대한 사랑이 식지는 않는다. 꽃받침을 꽃잎처럼 만들어낸 모습이 스스로를 위장하거나 과장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을 그대로 인정하고 최선을 다하다 보니 꽃받침의 일부가 꽃처럼 아름다워 졌을 것만 같다. 커다란 꽃을 피워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줄기와 잎의 가능성을 믿고 여름을 맞이했으리라.

이러한 수국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이 머무는 흙의 성질에 따라 색상이 다양하게 바뀐다는 점이다. 뿌리가 흡수하는 토양의 성질에 따라 꽃의 색이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이러한 수국을 보고 ‘진심’ 혹은 ‘변심’이라는 이중적인 꽃말을 붙였다.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존재로서 수국을 바라보면 수국의 모든 상황은 ‘진심’이다. 꽃의 아름다움이 부족하자 꽃받침의 능력을 키워서 스스로의 매력을 만들어 내고 흙의 성질에 따라 색을 바꾸어가는 것 모두 그렇다. 그러나 과장된 꽃받침이 뭉쳐있고 환경에 따라 쉽게 얼굴 색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재밌게도 ‘변심’ 그 자체다. 정작 수국은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 관심이 없을 테지만 말이다.

사람들도 자신의 외모를 꾸미고 때론 과장되게 드러내곤 한다. 주목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외모에 집착한다. 반면에 자신의 단점마저 ‘멋’으로 표현되는 사람은 다르다. 그것은 수국의 꽃과 꽃받침을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불리한 조건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람이든 꽃이든 같은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 생명을 이어가는 절대적인 힘은 크건 작건 잘 보이지 않는 곳에 가장 밀도 높은 덩어리로 뭉쳐있는 법이니까. 수국의 작은 꽃은 우리의 진심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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