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아 한산한 부산교육대학교 캠퍼스에선 매미가 제 세상을 만난 듯 울어댄다. ‘어떤 가지에 매미가 붙어 있나?’ 운동장을 둘러싼 벚나무와 사시나무 가로수를 지날 때면 호기심이 발동한다. ‘이놈이었구나!’ 소리나는 곳을 유심히 살피다 매미를 발견하고 눈도장 찍는 재미가 그만이다. ‘아이고!’ 땅바닥에 떨어진 매미를 보면 마음 한구석이 짠하다.

사무실이 부산교대와 이웃한 덕분에 누리는 호사다. 가끔 눈인사를 하는 사람도 생긴다. 다소곳하고 옷매무새가 정갈한 할머니가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눈길이 가는 이유가 따로 있다.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는 흰 개다. 덩치가 꽤 크지만 순둥이다. 그런데 이 개는 어디든 드러눕는다. 교문 앞이나 산책로, 학교 상징인 황새 조각상에서도.

드러누운 개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두 앞다리를 입 앞으로 가지런히 두는데, 세상 누가 뭐라 하든 상관 않겠다는 듯 태평스럽다. 온몸이 하얀 이 개의 까만 코가 두드러져 보인다. “몇 살입니까?”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대답이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할머니와 개가 보낸 세월이 만만찮은 건 분명하다. 이 개가 선보인 반전 매력이 있다. 한번은 가로수 옆 풀밭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아닌가. 알고 보니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할머니 설명이 이채롭다. “제 좋아하는 풀만 골라 먹어요.”

할머니와 대화는 이뿐이다. 어디 사는 누구인지도, 그 개와 어떤 인연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저 보면 반갑고, 안 보면 궁금하다. 단 한 가지, 딱 부러지게 말 할 수 있는 건 할머니가 한 번도 억지로 개를 움직이게 하려고 목줄을 당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사람과 개의 동행이다.

영국 작가 케네스 스티븐이 쓴 동화 ‘왜 개의 코는 축축할까’는 노아의 방주에 가장 늦게 탄 개가 어떤 엄청난 일을 하는지 소개한다. 망망대해를 떠돌던 방주에 구멍이 생겨 물이 새는 위기 상황에서 노아가 개에게 부탁한다. 개는 묵묵히 코로 구멍을 막는다. 개 덕분에 방주는 위기를 탈출한다. 노아는 개를 믿었고, 개는 그 믿음에 보답한 셈이다. 정말 그 때문에 개의 코가 늘 축축한 건 아니지만 사람과 개의 교감을 알려주는 좋은 사례다. 할머니와 흰 개도 반려견 시대의 아름다운 삽화로 손색이 없지 싶다.

동물에 처음으로 별도의 법적 지위를 부여하는 민법 개정이 추진된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란 선언은 곧 사람과 동물의 사회적 공존을 의미한다. 오늘은 중복이다. 할머니와 흰 개에 좋은 소식이었길….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