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시민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때 민주주의를 꽃피웠다. 아테네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으로 생산력이 높아지고 날로 강성해졌다. 이웃 나라 스파르타는 불안했다. 그리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 아테네를 공격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404)이 일어났다. 해상무역이 활발한 아테네는 해군이 우위였고 내륙 국가 스파르타는 육군이 강했다.

그림= 서상균기자

페리클레스는 불리한 육상전투를 피하고 요새화된 아테네 성벽 안으로 시민을 몰아넣은 다음 방어에 치중했다. 우세한 해군력을 내세워 스파르타와 스파르타를 따르는 동맹국의 항구를 공격해 항복을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나 그의 전략이 빛을 발할 때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아테네 역병(Plague of Athens)이 퍼진 것이다.

역병으로 20만 명이 넘는 사람 중 3분의 1일 이상이 사망했다. 전쟁으로 비위생적인 상황에서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하자 전염병이 급속하게 퍼졌다. 식수와 생필품이 고갈되고 페리클레스도 죽고 말았다. 아테네는 무정부 상태에 빠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전염병은 적국 스파르타도 공포에 떨게 만들어 아테네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참혹한 역병에도 운 좋게 살아남은 투키디데스는 역사를 기록해 전염병으로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남겼다. 투키디데스의 기록에는 면역 현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 나온다. 누군가는 특정 질병에 면역력이 있어, 한번 감염된 사람은 같은 병에 다시 걸리지 않았다.

면역(immunity)이란 말은 ‘제외됨’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기원후 50년경 로마시인 마르쿠스 루카누스가 뱀에 물린 상처에 저항성이 있는 부족을 묘사하면서 면역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에도 난파된 바울이 지중해 섬에서 독사에 물렸음에도 생존한 내용이 나온다. 면역은 19세기 후반 파스퇴르나 메치니코프 등에 의해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정립되었다.

러시아 생물학자 메치니코프는 온몸이 투명한 바다 불가사리 유충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던 중 작은 세포가 유충의 몸 안에 들어간 붉은색 염료 입자를 집어삼키는 걸 보았다. 그는 몸 안의 세포가 외부에서 들어온 이물질을 퇴치하는 세포성 면역이론을 주장했다. 비슷한 시기 독일에서는 디프테리아균에 감염되었다가 회복된 동물의 혈청을 감염된 적이 없는 동물에게 이식하면, 디프테리아에 면역이 생기는 것을 증명했다. 면역이 세포에 의한 작용인지 몸속 체액으로 되는지 대립하다가 상호보완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포면역과 체액면역은 면역을 이해하는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특정 질병에 감염되고 나서 회복되면 그 병에 면역력을 획득하고, 백신 접종으로 질병을 예방하는 것은 스스로 항체를 만들고 몸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도 같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기억하는 면역세포의 작용이다. 인류는 신비로운 면역 현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두법을 시행한 제너, 광견병 백신을 만든 파스퇴르 이후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새로운 백신들이 속속 등장했다. 1921년 결핵 예방을 위해 BCG가 개발됐고 1920년대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백신이 나왔다. 현재는 DTP라고 해서 3가지를 한 번에 접종하는 혼합백신을 사용한다. 1950년대는 미국에서 크게 유행한 소아마비(폴리오) 백신이 나왔고 1960년대는 홍역, 볼거리, 풍진을 예방하는 MMR 혼합백신이 등장했다. 1980년대 재조합 B형간염 백신, 1990년대 A형간염 백신이 나오고 2000년대 자궁경부암을 예방하는 인유두종 백신도 나왔다.

백신 제조 기술도 진화되어 전통적인 생백신, 사백신에서 벗어나 최근에는 유전자 mRNA를 이용한 최첨단 백신이 접종되고 있다. mRNA 백신은 제약기술이 앞선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백신을 자체적으로 개발, 생산하지 못해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코로나로 바이오, 제약에 관심이 높다. 뜨거운 관심이 신약 개발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계기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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