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여름을 맞았다. 올 여름 더위는 경험하지 못한 수준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주제 사라마구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삶은 연약하다. 눈이 멀어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했다.

땀 때문에 삶이 연약해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약한 지점이 있다. 땀이 나는 순간 여유 있고 거칠 것 없던 삶은 사라지고, 경박해지고 소심해진다. 당황하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생각은 온통 땀과 땀 냄새와 땀이 배어나는 옷에 집중된다.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리하여 자아는 고갈되어 간다.

자아고갈은 댄 애리얼리의 ‘거짓말하는 착한 사람들’에 나오는 개념으로, 플로리다 주립대학의 로이 보마이스터 교수가 처음으로 제시했다고 한다. “자아고갈이란 억지로 뭔가를 하도록 자신을 독려한다면, 다음 도전이 닥쳐왔을 때 자제력을 발휘하려 하지 못하거나 그럴 능력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욕망을 이겨내는 데에는 노력과 에너지가 소모되고, 충동을 억제하려는 모든 시도가 오히려 자제력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우리는 유혹에 더욱 취약해진다. 유혹에 맞서 싸울 힘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혹이 축적될수록 약해진다.”

자아고갈은 옆으로 살짝 밀어놓고, 이제 여러 살(殺)들을 등장시켜야 한다. 간살(看殺)이라는 말이 있다. 볼 간 죽일 살. 쳐다봐서 죽인다는 뜻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위개라는 미남이 살았다고 한다. 인기가 많았던 그는 어느 날 외출했다가 팬들에 둘러싸여 혼절한 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한다.

간살로부터 시작된 생각은 언살(言殺)로 이어졌다. 말씀 언 죽일 살. 말로 죽인다는 뜻인데, 실은 말로 시간과 관계를 죽인다는 의미다. 언살은 말의 독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권력자나 연장자, 상사들은 흔히 말을 독점하고 있다.

문살(文殺)도 있다. 글로 죽인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진부한 글로 읽는 사람의 시간을 죽인다는 의미다. 들으나마나한 말을 듣는 것이나 읽으나마나한 글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좋은 글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삶의 실상이 드러나 있다. 이런 점에서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모든 삶에 내재한 서러움과 남의 서러움을 아는 것에서 나오는 연민의 감정은 ‘토지’를 관통하는 정서다. 1897년부터 1945년까지의 이야기가 2021년 우리에게 현재화되는 지점이다.

전살(錢殺)은 돈 때문에 죽는 것을 말한다. 돈은 힘이요 권력이자 명예고 안락함이다. 그러기에 돈 때문에 죽고 산다.

식살(食殺)도 있다. 많이 먹어서 죽는다는 것이다. “2010년 비만으로 죽은 사람은 300만 명이다.(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애살은 샘이 나서 죽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행불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가까운 사람의 성공이나 실패라는 말과 같이 샘은 삶을 갉아 먹는다. 염살(炎殺)은 더워서 죽는다는 뜻이다. 답답살은 답답해서 죽는다는 의미다.

이제 옆으로 밀어놓았던 자아고갈과 여러 살들이 만나야 한다. 언살, 문살, 전살, 식살, 애살, 염살, 답답살 때문에 자아는 급격하게 고갈되어 간다. 자아가 고갈되면 쉽게 짜증과 화를 내고, 유혹과 중독, 사기에 쉬이 넘어간다.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이라는 호르몬은 밤 12시 이후 많이 분비되는데 식욕에 저항하지 못하고 배불리 야식을 먹는 것도 낮 시간 동안의 자아고갈과 관련이 있다. 자아가 고갈되면 어리석은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되므로 중요한 판단과 결정은 자아고갈 전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아고갈이 있다면 자아충전도 있다. 휴리스틱 즉 어림짐작이나 고정관념 사용하기, 남의 시간을 자기의 시간으로 전환하는 잔머리, 낮잠, 초심 잃기, 최선을 다하지 않기, 유튜브의 ‘no surrender festival’을 최대 볼륨으로 들으며 그 자유로움을 느끼기, 기대의 분산 그리고 ‘오만데삼총사의 대모험’과 같은 좋은 동화책 읽기 등등. 자신을 닦달하지 않고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여름나기, 어렵지만 건너야 할 과제를 앞두고 있다.

도서출판 함향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