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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소리] 우리가 속도를 맞출 때 /이슬기

  • 이슬기
  •  |   입력 : 2021-07-13 20:12:46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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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는 어린이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서 감동적인 책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는 한 어린이가 자기 힘으로 신발 끈을 묶어내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어른의 시선으로 보면 신발 끈 묶기는 어린이에게는 고난도 작업이라 커 가면서 점점 수월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책에서 그 어린이는 지금도 묶을 수 있다며 단지 어린이는 시간이 걸릴 뿐이라고 대답한다.

흔히 어른은 어린이가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일을 도와준답시고 대신 해주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지금은 못해도 나중에는 잘할 거라는 말을 격려와 응원의 의미로 덧붙인다. 어릴 적 누구나 이러한 어른의 배려를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김소영 작가의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이것이 어른의 오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시간이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평소에는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대개는 필요한 시간을 넉넉히 주면 어린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그렇지 않은 일보다 많을 테다. 비단 어린이뿐만 아니다.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어쩌면 우리는 상대방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배려보다는 나 편하자고 하는 반쪽짜리 배려를 더 자주 해온 건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발상에 예민한 감수성을 키워야 하는 건 특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일단은 가르치는 사람이다.

몇 해 전부터 프리랜서 미디어교육 강사로 일하면서 여러 학생을 만나고 있다. 얼마 전 중학생 10여 명과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수업을 맡았다. 무엇이든 제작하기 전에는 사전 제작 단계에 해당하는 기획과 구성을 거쳐야 하는데, 다소 지루하고 꽤 어려운 과정이다. 역시나 내 계획대로 잘 진행되진 않았다.

나도 그렇지만 학생들도 기획을 하라면 으레 추상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아 구체성이 떨어진다. 대충 하고 바로 제작단계로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기획과 구성의 중요성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싶어 한 차시 더 시간을 할애했다.

이렇게 수업 방향은 종종 변경되기도 한다. 전보다는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덜 주고 내가 옆에서 계속 질문을 던져가며 좀 더 구체적으로 다듬어나갔다. 학생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페이스메이커 역할은 중요하지만 결코 쉬운 일도 아니다. 한 학생이 쓴 기획에선 나도 아이디어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한정된 수업 시간에 계속 고민만 할 수 없어 일단 조금 있다 다시 해보자고 말한 뒤 그 다음 학생의 것을 먼저 손봤다.

잠시 후 다시 그 학생에게로 갔을 때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걸 보았다. 나는 많이 놀랐지만 호들갑 떨지 않고 조심스럽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고맙게도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내게 말해주었는데, “다른 친구들은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 혼자만 뒤처진 것 같아서요…”라고 했다.

순간 아차 했다. 내 딴에는 수업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선택이었으나 그 학생은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에 패배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 학생이 자기 혼자만 뒤처진다고 느끼지 않았으면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사과를 하고 다시 한 번 눈높이를 맞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책상 옆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자기보다 낮은 눈높이에서 경청하는 나의 진심이 가닿았을까. 학생은 자기만의 속도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고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내 눈에도 보였다.

그날의 일은 내게 부끄러움과 뭉클함을 불러일으켰다. 돌아보면 항상 가르치면서 오히려 배우고 성장했다. 가르친다면서 내게 부족한 걸 배우는 아이러니라니….

결국 가르친다는 건 약간 앞에 서서 이끌어주는 게 전부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상대방보다 조금 앞에서 걷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때 나의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나를 뒤따르는 이의 속도에 맞춰야 한다. 그럴 때 그들과 나는 서로를 더 이해하고 신뢰하게 될 것이다.

작가·‘일 인분의 삶’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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