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3대왕 태종은 셋째 아들 충녕대군을 세자로 세우며 ‘천성이 총민하고 학문에 힘쓰고 정치하는 방법을 안다’는 이유를 들었다. 피비린내 나는 왕자의 난을 겪었던 태종으로선 조선을 반석 위에 올려놓을 후계자가 필요했지 싶다. 충녕대군이 1418년 8월 왕위에 오르니 4대왕 세종이다. 세종은 태종의 바람을 뛰어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어쩌면 태종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을 능력도 꽃피웠다. 바로 과학자 세종이다.

세종은 중국이 아니라 조선을 중심으로 해가 뜨고 별이 지며, 계절이 변하는 원리를 파악하고자 했다. 천문과학은 농업이 근간인 조선을 살찌우는 지름길이었다. 제때 씨 뿌리고 거두기가 그만큼 중요했다. 그리고 조선 백성이 읽고 쓰는 바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조선을 조선답게 만드는 과학독립운동이다. 국가 표준시계인 자격루 등 천문과학기기와 한글은 세종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세종 곁에 훌륭한 과학기술자들이 있어 가능했다. 부산 출신 장영실과 문무를 겸비한 이천이 대표적이다. 이천은 총포무기에 쏟은 합금기술을 활용해 조선 금속활자의 기본이라는 갑인자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천은 군인, 과학기술자, 관료 역할을 하며 세종의 국방 및 인쇄술 혁신을 도왔으며 천문기기를 제작하는 장영실의 든든한 우군이었다. 장영실은 이천과 함께 갑인자 제작에 힘을 보탰을 뿐만 아니라 천문기기 분야에서 탁월했다. 자격루를 비롯해 천문 관측 기본 기기인 대간의와 소간의,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등으로 세종과학시대를 열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갑인자 등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과 일성정시의·자격루 부품 등 세종시대 과학 유물이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한다. 이 중 600여 점은 지금까지 나온 한글 금속활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갑인자는 조선 금속활자 40여 종 가운데 기술적인 측면에서 가장 완벽하다고 꼽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일성정시의 부품은 1437년 4개를 제작했다는 ‘세종실록’ 기록을 입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세종의 지시로 장영실이 만들었다고 하지만 실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또다른 선물 보따리인듯한 이 낭보는 ‘누가, 왜, 이런 곳에 묻어놨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그걸 풀어 역사의 틈새를 메우는 게 학자들 몫이라면 세종과 장영실 이천을 오늘 소환하는 건 우리 일이다. 부산 동래구 동래읍성 장영실과학동산을 다시 찾아 그가 만든 일성정시의 등 천문기기 복원품을 살펴볼 이유가 생겼다.

정상도 수석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