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업은 유사 이래 가장 오래된 글로벌 비즈니스이다. 미지의 국가와 거래하기 위해서 장기에 걸친 항해로 인해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많은 국제규약과 해운업에만 적용되는 독특한 거래관행이 생겨났다. 해운기업간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보다 광범위한 항로 네트워크로 적시에 양질의 정기 운송 서비스 제공에 대한 화주의 요구가 높고, 국제운송 서비스를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선사 간 협정을 통해 여러 선사가 협조하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선사간 공동행위를 허용하지 않았다면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동하여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할 선사도 없고 있더라도 매우 높은 운임을 요구하여 오늘날의 세계화를 통한 경제번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EU가 2008년 이후 얼라이언스를 제외한 공동행위를 제한하기는 했지만 미국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 대부분의 해운국가에서 해운업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국제적인 흐름과는 달리 최근 해운업계가 공정거래위원회의 동남아항로에 취항하는 12개 국적 선사에 대해 최대 18년에 해당하는 금액의 매출액 8.5~10%에 해당하는 과징금 5600여 억원을 부과한다는 통보로 위기를 맞고 있다. 공정위의 선사공동행위에 대한 조사는 동남아항로에 머무르지 않고 한중항로, 한일항로에 대한 조사도 예고하고 있어 근해항로에서의 경쟁력을기반으로 부산을 허브항만으로 발전시키고 국제무역의 첨병역할을 해 온 우리 해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공정위는 자신들이 인정해 왔던 해운업계의 공동행위를 부정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우리의 경쟁국가 내지는 경쟁기업은 유리하게 하고 한진해운 파탄으로 인하여 쪼그라든 우리의 해운지형을 지도상에서 아예 지워버릴지도 모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유로 공정위의 조사는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첫째,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는 해운업 제29조 1항에 의해 이미 1980년 경제기획원에 ‘경쟁제한행위’ 등록을 한 사안으로, 공정거래법 상으로도 이미 허용된 것이다. 해운업의 공동행위는 육상의 공정거래법을 적용하지 않고, 해운법을 적용하여 그 법적 행위의 정당성을 이미 확립하고 있는바 동남아 정기선사의 공동행위에 문제가 있다면 주관부처인 해양수산부와 공정위가 우선 협의하고 조정해야 할 사안이다.
둘째, 공정위의 금번 조사는 국제해운의 규칙을 무시한 것이다. 주요 해운 선진국들은 해운법상 공동행위를 허용하면서 명시적 또는 묵시적으로 공정거래법을 적용 제외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의 경쟁국가인 일본 중국 대만 싱가포르 등이 해운기업의 공동행위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공정위의 금번 조치는 국제적 법적공평성을 심대하게 해치는 것이다.
셋째, 만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심결대로 조치 의견이 강행되어질 경우, 한진해운 파산과 물류대란 파동 이후, 어렵게 버티어 온 국내정기선사의 경영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고 해운항만물류산업의 실업이 우려된다. 천문학적 과징금 부과로 해당 국적 선사들의 선박자산 매각, 기업 도산 및 국제경쟁력 쇠퇴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국내 수출기업들의 물류애로 가중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적선사뿐만 아니라 외국 선사에 대한 과징금 부과시 해당국으로부터의 보복조치 및 해당국 정부와의 외교분쟁 발생 가능성까지 예견되고, 이러한 상황은 결국 우리 국적 선사들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킨다. 더구나 같은 협정의 회원이었던 외국선사에게는 5년간으로 기간도 축소하고 과징금도 국내업체의 반에 지나지 않는 금액을 부과하며, 나아가 일부 외국선사는 아예 징계대상에서 제외하는 등 그 기준조차 의심스럽다.
넷째, 공정위가 제기한 공동행위가 불법이라고 하더라도, 실제 운임은 하락하고 선사의 영업이익률이 감소하는 등, 운임이 공동행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 어려워 이를 부당한 공동행위로 인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다. 심지어 최초로 문제를 제기한 단체조차도 정기선사의 공동행위에 대한 몰이해를 인정하고 이미 해당 건의 신고를 적법하게 철회했다.
이를 감안하면 현재는 우리나라의 외항해운에 관한 독점 금지법 적용 제외 제도는 앞으로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고 금번 공정위의 조치는 취소되는 것이 국익의 차원에서도, 국제해운거래 관행 차원에도 적절하다. 향후 외항해운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에 따라 외국에서 경쟁법 적용 제외 제도를 재검토하는 움직임이 주류가 될 때까지 우리나라도 해운업에 대한 독점 금지법 적용 제외 제도를 유지해야만 한다.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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