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보건복지협회가 2019년 10월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청년층의 절반 가량이 ‘비혼’(47.8%)과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 형태(39.5%)에 대해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은 향후 결혼을 하고 싶지 않거나(39.3%) 절대 하지 않을 것(8%)이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여성가족부에서 2020년 9월 조사한 ‘제4차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는 비혼 독신(54%)이나 무자녀 가족 형태(52.5%)에 동의한다고 밝혔다(10대 역시 47% 내외로 동의했다).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여성과 남성이 부부가 되어 자식을 낳고 가족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했다면 오해를 한 것이다. 여성과 남성이 짝을 이루어 자식을 낳는 행위는 자연법칙에 따른 사생활이지만, 그들이 여성과 남성으로 함께 사는 생활방식은 그들이 속한 문화와 전통에 따라 정의되는 사회적 관계이다. 예를 들어 암컷과 수컷이 유성생식을 하는 척추동물들은 자연계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이런 동물 중 집단생활을 하는 것들은 힘 센 수컷 주위에 암컷 여러 마리와 그들의 새끼들이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일단 이렇게 집단을 형성하면 분명히 지켜야 할 질서와 관습이 생기고, 그 질서를 인정하지 못하는 젊은 수컷은 집단을 떠나게 된다.
가부장제 사회를 형성해 온 인류도 최근까지 일부다처제를 시행했는데, 우리나라도 같은 제도를 시행하다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일부일처제를 민법으로 결정했다. 그러므로 부부나 가정생활은 불변하는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변하는 사회적 관습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남성은 바깥에 나가서 일을 하고 여성은 집안을 돌보며 자식을 기르고 혈연과 혼인으로 엮인 친족들이 장유유서의 가치에 따라 밀접한 관계를 맺는 전통적 가족관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점점 그 힘을 잃고 있다. 가장이나 연장자의 권위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가족 구성원들은 개인의 희망이나 목표가 우선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여성이 아내와 어머니로 고단한 가사노동과 가문을 이어갈 남자 아이를 생산하는 막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믿는 젊은이는 없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법적 지위를 보장받는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성별과 상관없이 전통적인 가족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젊은이들이 결혼을 의무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우리 사회가 부적절하거나 부당하다고 비판하는 성문화나 가족관은 어떤 것이 있을까. 결혼해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맺는 간통은 가족의 붕괴를 초래하거나 가문과 가문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는 심각한 범죄였다. 그러나 2015년 헌법재판소는 형법에서 간통죄를 폐지했는데,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을 계속 유지하도록 강요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폭행이나 협박을 통해 강제로 다른 사람과 성행위를 하는 강간은 과거에 여성의 정조를 빼앗는 범죄로 해석되었다. 여성의 몸은 특별한 형태의 재화이고 이 재화는 사회가 인정하는 방법으로 사용할 때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데, 이 재화를 강제로 탈취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범죄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제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강간은 성과 관련된 폭력행위로 이해되고 있다.
이런 새로운 논리에 따르면 개인이 결정한 성관계는 법적으로 적절한 행위가 되는 셈인데, 혼전 성관계나 동거에 대한 인식이 갈수록 달라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존 질서를 강화하던 성문화나 가족관은 퇴조하고 있으며, 젊은이들은 그런 기조에 맞추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문화는 시대의 거울인데, 전통적인 가족관은 붕괴했고 아직 새로운 시대를 대표하는 가정의 모습은 확립되지 않았다. 이런 상태에서 어린이 양육수당을 지급하거나 섯째 아이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등 단편적인 정책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돌릴 수는 없다. 젊은이들이 비인간적인 경쟁을 견디지 않아도 교육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수도권 명문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제대로 된 직업을 찾을 수 있으며, 엄마나 아빠 찬스를 쓰지 않아도 가정을 꾸릴 집을 살 수 있고, 밤낮 없이 맞벌이로 일하지 않아도 아이를 기를 수 있다면 혹시 또 모르겠다.
물론 이런 꿈 같은 세상이 내일 찾아오지는 않을테고, 결국 우리 사회는 비혼과 무자녀 가족이라는 현실을 직시하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을 설득할 장기적인 정책들을 세우고, 폭 넓게 주변 국가와 협조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윤성덕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전문연구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