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논란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건이 불거지기도 한다. 이런 것까지 문제일까 싶기도 한데, 최근에는 손가락이 문제다. 말인즉,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을 비하하는 의미를 가진 특정 손가락 모양을 사회 곳곳에 암호처럼 숨겨 놓은 게 들통났다는 것이다. 상품 디자인이나 공공기관 포스터 한 구석에 그려진 손가락은 남성 혐오, 여성 우위의 표지가 은밀하게 삽입된 증거로 제시됐다. 기관에서 해명글까지 올린 걸 보니 파장이 작지 않은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이 논란이 정작 페미니즘의 본질과는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유사한 사건은 몇 해 전에도 있었다. 극우 사이트의 이니셜이나, 고인을 모욕하는 이미지들이 방송화면이나 공공 디자인, 심지어는 교과서에까지 삽입된 것이 발견되곤 했다. 실수를 유도했거나 의도적으로 행한 결과일 터이다. 이에 대응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식은 공론장의 의연함이다. 저열한 놀음에 정치적 반응은 사치다. 저열함을 올바름의 입장에서 꾸짖는 것이 가장 합리적 대응이다. 남성혐오의 표식들도 그렇다. 우연과 오해인 듯하지만, 설령 의도가 개입됐다고 하더라도 그게 페미니즘 자체를 논할 근거가 될 수 있을까.

이를 두고 페미니즘의 폭력성과 남성의 역차별을 논하려면 그 손가락이 사회적 실체를 가진 상징 기호여야 한다. 예를 들어 나치의 하켄크로이츠 문양처럼 기호는 그 너머의 분명한 실체와 연결될 때 상징으로서 사회적 의미를 가진다. 그렇지 않고 하나의 의미와 단순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 기호는 도상, 즉 아이콘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콘이 무언가를 떠올리게 만든다 한들, 담론의 주제가 될 수는 없다. 기호와 연결된 하나의 의미만 가지고 문제 삼는다면, 마치 ‘만(卍)’를 보고 나치가 떠오른다고 시비 거는 격이다.

남혐의 손가락도 그렇다. 여기저기에서 손가락 아이콘이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아이콘 자체는 페미니즘 담론과 격차를 가진다. 진지한 논의는 현실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손가락 숨기기의 저열한 놀이에서 시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가락 그림의 알 수 없는 진실과 페미니즘 담론의 현실을 동일시하는 것은 무지의 산물이다. 아니면 또 다른 이해관계의 증거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이번 논란을 거든 어느 정치인이 그렇다. 그는 일련의 사건이 나쁜 의도의 결과이며, 남성에 대한 역차별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그 근거로 그런 손 모양으로는 광고 속 음식을 절대 집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여기서는 페미니즘도 논리도 찾기 어렵다. 누군가 그 손 모양으로 집는다면 반증이 되기나 하겠는가. 이런 발언들은 단순한 아이콘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려는 시도일 가능성이 높다. 즉 남혐의 아이콘을 빌미로 핍박받는 남성이라는 의미를 가공하고 이를 보호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 말이다.

이번 일은 대중적 논란들이 본질적 논의로 나아가지 못해서 벌어진 패착의 사례로 꼽아야 하겠다. 사안의 본질에 다다르지 못하고 부차적 논란에 휩쓸릴수록, 논의는 무지의 영역을 맴돌거나 다른 의도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외부의 불온한 의도를 경계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논의의 현재 수준 또한 반성해야 한다. 지엽적인 논란을 극복하는 것은 진지한 논의의 힘이다. 그 손으로 집을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는 말장난에 빠지지 않으려면 페미니즘 논의 자체가 더 굳건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하지 못한 지금의 상황은 페미니즘 논의의 한계를 방증한다. 분석의 현실성과 논리의 엄정함이 약화될 때 페미니즘은 특정한 정치적 이해 아래 들어갈 위험이 있다. 기존 질서의 재정립을 기획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 역시 넓은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이는 사회 일반의 동의를 얻기 위해서는 길고 어려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대중을 설득하기 위한 전략과 담론의 수준이 적절하게 결합해야만 페미니즘의 가치가 올바르게 실천될 수 있다. 여기에 이르기 위한 여정에서 이번 사태와 같은 헛발질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논의의 공간을 지켜낼 수 있는 담론의 체력이 필요하다. 이는 페미니즘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을 통해 사회성이 확장되면서 갈등은 증가하고 합리적 중재의 가능성은 점차 옅어지는 것 같다. 지엽적인 문제가 본질을 흐리는 것을 막으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진지한 논의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할 것이다.

김성환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