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세의 원외(院外) 청년 정치인이 보수정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의 당대표로 선출된 사건은 한국 정치에서 또 한 번의 세대교체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데에 큰 이견은 없는 것 같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들이 당 안팎에서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으나, 이는 이준석 대표 개인에 대한 우려라기보다는 세대교체에 대한 불안감이 아닐까 싶다. 한국 정치를 어떤 정치 세력에게 맡길 것인지 적극적인 정치 참여로 결정해 온, 50~60대를 중심으로 한 장노년층 유권자들의 불안감으로 보인다. ‘저렇게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야, 쯧쯧쯧’을 연발하게 했던 20~30대 청년들의 정치에 대한 태도가 갑자기 돌변하여 제1 보수당의 청년 당대표를 만들어내자, 한편으로는 축하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쟤네들에게 맡겨도 되려나?’ 싶은 것이 50~60대의 속마음일 것이다.
청년 정치인 이준석 대표를 중심으로 한국 정치가 들썩이는 것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도 복잡하다. 정치학을 전공했고, 이런저런 이유로 정치에 한 발을 들여놓고, 인제 그만 발을 빼지 싶을 때마다 그 시기에 가장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이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데 이제 스스로 그만두기를 결단하기도 전에 물러나야 할 그룹에 속해버린 것 같다. 정치판에 제대로 들어가 보기도 전에 밀려나게 생겼다. 밀려 난다기보다는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문이 닫혀 버리는 상황이다. 남 탓을 좀 하자면 이런 상황을 초래한 586 정치인들이 밉다.
청년 보수당대표의 출현은 대한민국의 청년 유권자들이 현 정치 상황을 보수와 진보의 대결 구도로 보는 고정관념을 깬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청년 유권자들이 보수화되었다는 일부의 해석은 지나치게 도식화된 것으로 생각한다. 장노년층은 보수이고 청년층은 진보라는 공식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이미 그 타당성을 잃었다. 20대에는 거리를 누비며 1987년의 승리를 이뤄냈고, 30대에서 40대로 접어드는 시기에는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키는 쾌거를 맛봤던 현재 50대 유권자들의 다수는 아직도 자신을 민주진보 세력으로 규정짓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여기고 있다. 반면에 2~30대의 청년들은 진보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거둬들이고 있다.
보수 정치인의 일부가 기득권 지키기에 몰두할 수 있지만, 보수정치의 철학이 기득권 지키기는 아니다. 좌파 정치 세력이 우파 정치 세력에게 씌우는 프레임일 수 있다. 보수라고 해서 변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위험이 있는 급격한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다. 적절한 변화가 현재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보수정치도 당연히 받아들인다. 반면에 진보정치는 지금 변화를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에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하는 정치이다. 지금 변화를 위한 아픔이 있어도 미래를 위해서는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진보정치다. 진보정치가 국민의 지지를 얻어내려면 청사진이 필요하다. 청사진이 없다면 사이비 진보다. 최저임금을 올리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여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려던 문재인 정부 애초의 의도를 비난하는 것은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떤 정책이든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인데, 전문가들의 부작용에 대한 고언(苦言)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청사진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은 아직도 자신을 진보라고 착각하고 있는 586 정치에 더는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청년 당대표의 출현이 국민의힘 당에 대한 이미지를 바꿔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데에 대한 이견도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세대교체의 바람이 야당에게 꼭 유리한 것은 아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킨 원동력은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정치 청산의 바람이었다. 김대중을 넘어서면서 이회창까지 3김 정치의 잔재로 밀어냈던 선거전략이 지금 다시 작동되는 것이 감지된다. 청와대의 표정도 그다지 나빠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전 총장도 이재명 지사도 세대교체의 물결에 쓸려갈 수 있다. 자만하면 진다는 대한민국 선거의 철칙이 다시 그 위력을 보일 것이다.
차동욱 동의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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