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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이 나이에 무슨 …? /조갑룡

  • 조갑룡 교육인
  •  |   입력 : 2021-06-20 19:14:09
  •  |   본지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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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뻐꾸기 울어 아카시아꽃 흩날리더니 봄은 늦고 여름은 이른 6월, 송아지 등 너머 무지개 아른거린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 한가지/…’라고 읊었다. 무지개 같은 젊음은 나이 들면서 점차 무채색으로 변해가기 일쑤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소한 기쁨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이 종종 삶에 깃들지 않는다면 뇌혈류는 줄어들고 늙음은 가속될 뿐이다. 나이 듦과 늙음은 다르다. 나이 듦은 어쩔 수 없지만 늙음은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러니 ‘이 나이에 무슨…?’ 이라는 뻔한 얘기 말고 나를 심쿵하게 할 구체적인 방법에 집중해보면 어떨까? 인생의 우울함은 설렘으로 회복되니 말이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서울의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동원의 집에 가봐야겠다고! ‘사랑의 콜센터 정동원 노래모음’을 링크시켜 주시면서 꼭 들어 보란다. 노란 티셔츠도 하나 사 보냈다고 자랑했다.

필자의 고향 집에서 십리 쯤의 거리에 정동원의 집이 있다. 정동원이 없는데도 휴일은 물론 평일도 시끌벅적하다. 거의 대부분 시니어들이다. 홍자 송가인 임영웅 영탁과 같은 트로트 가수들의 팬은 시니어 층이 많다. 그들은 좋아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팬클럽이 BTS의 팬덤 ‘아미’ 수준이다. 새로운 에너지로 무장한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들이 열광에서 오는 설렘을 즐긴다. 괜히, 서울의 인사동에서는 ‘뉴미디어 아트’가 한창인데 나는 지리산 골짜기에서 주경야독(晝耕夜讀)의 후진 ‘꼰대 아트’를 부여잡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대학 시절 밴드를 했던 경험을 호출하여 비트(beat)가 있는 좀 특별한 얘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고향 친구들에게 기타를 배워보자고 했다. ‘이 나이에 무슨 기타냐?’며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숯에 불을 붙이는 격이었다. ‘사람은 나이가 아니라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도 손주들한테 폼 한 번 잡아보자!’ 회유 반 협박 반으로 결국 시작을 했다(하지만 아직도 한 녀석은 기타를 언제 내던질지 몰라 가슴 졸인다).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흙만지는 굵고 투박한 손가락으로 F코드를 잡으라고 하는 것은 고문이다. 하지만 세상을 향한 의미 있는 날갯짓은 심박수를 늘린다. 작년 10월에 시작했으니 어언 9개월, 이제는 코드도 여남은 개를 구사하고, ‘목포의 눈물’ 전주곡에 이어 ‘비내리는 고모령’까지 진도가 나갔다. 내친김에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자고 했다. 언감생심(焉敢生心)의 밴드 제안에 친구들의 얼굴에는 창백한 미소가 번졌다. 복지회관에서 ‘애수의 소야곡’과 ‘불놀이야’를 가지고 동네 사람들을 홀릴 생각을 하면 손가락 끝과 입술의 물집은 아무것도 아니다.

우린 종종, 아이들 일류대학 보내고 직장에서 고속 승진하면서 아파트 평수 늘렸던 흘러간 얘기로 폼을 잡곤 한다. 헌데 어쩌란 말인지 별로 재미가 없다.

옛날얘기 말고 새로 시작한 사진, 목공예, 영어회화에서 찾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 벅차하는 삶에 뛰어들어보면 어떨까. 가장 훌륭한 노후 대책은 공부하는 것이다. 모퉁이를 돌면 다음 모퉁이에는 또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지고, 찾아가지 않았으면 모르고 살았을 길에 대한 감동이 있으니 말이다.

95세의 뒷집 할머니는 몽당연필 침 묻혀가면서 한글을 익히시더니 평생 소원이었던 ‘사씨남정기’를 읽기 시작하셨고, 한 친구 녀석은 동네 노인회 회장 하려고 ‘노인심리상담사 1급 자격증’을 땄다. 능력의 개인차는 아무리 커도 5배를 넘지 않지만 의식의 차이는 100배의 격차를 낳는다고 한다. 나이를 떠난 가능성의 영역은 무지개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말이다.

‘…찬란히 빛나는 무지개… 그는 여기서 그 야망을 마침내 단념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아직껏 검었던 머리는 갑자기 하얗게 되고, 그의 얼굴에는 전면에 수없이 주름살이 잡혔다.’ 김동인의 단편 ‘무지개’의 마지막 구절이다. 무지개를 포기하는 순간 소년은 늙어 버렸다.

교육인·전 부산영재교육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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