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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도설] 터널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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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나 체증으로 꽉 막힌 터널 속에 갇힌 경험이 있는 사람은 알 게다. 콘크리트 내벽이 괴물로 변해 숨통을 조이는 듯한 공포를. 생존 방안은 간단명료하다. 스스로, 또는 외부 도움으로 터널을 벗어날 때까지 정신을 차리고 공포를 견뎌내야 한다는 거다. 인류사에서 이를 가장 모범적으로 보여준 집단이 베트남 민족이다. 그들은 프랑스가 지배하던 1948년부터 호치민 북서쪽 밀림에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려야만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가로 50㎝, 세로 80㎝의 좁디 좁은 터널을 1975년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 장장 250㎞나 건설했다. 베트남 민족의 수난 상징이자 해방의 단련장이었던 ‘구찌 터널’이다.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1915~2012)은 개발도상국이 저개발 상태에서 선진국에 이르는 과정을 긴 터널을 빠져나가는 것에 비유했다. 이른바 ‘터널 효과’다. 그는 터널 속 혼란을 사회 발전의 불가피한 요건으로 봤다. 혼란 극복을 통해 발전이 이뤄지는 만큼 저개발 사회에는 자본보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스페인 내전 때 반파시스트 대원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레지스탕스와 미군으로, 전후에는 저개발 국가를 돕는 학자로 평생 현장을 누볐던 허시먼 다운 이론이다. 그의 인생 자체가 고난의 터널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라 할 수도 있겠다.

코로나19 역시 압축성장주의에 경도된 현대문명이 만든 터널이다. 출구조차 가늠하기 힘든 ‘코로나 터널’에 희미하나마 빛이 보인다는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5일 미국 델타항공 조종사 크리스 데니슨의 가슴 뭉클한 사연을 전했다. 데니슨은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해 3월 23일, 하늘길이 묶이자 자신이 몰던 비행기 조종석에 쪽지 한장을 남기고 떠났다. “당신이 이 쪽지를 발견했다는 건 아마 이 터널의 끝에 빛이 보인다는 뜻일 거다. 안전한 비행이 되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이 쪽지가 그로부터 430여 일 지난 최근 발견됐다. 백신 접종으로 코로나가 수그러들어 운항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데니슨 쪽지’ 발견은 우리에게도 희망으로 다가온다. 멀지 않아 ‘코로나 터널’ 끝에서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가와바다 야스나리 소설 ‘설국’ 서두) 터널 끝에 펼쳐진 백설의 신천지를 발견한 감동이 아마 이런 것일 게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전에 먼저 ‘코로나 터널’을 의연히 통과해야 한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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