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집안 어른들은 결혼과 출산을 해야만 성숙한 어른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곤 했다. 흡사 만병통치약처럼 묘사되는 결혼과 출산이 실은 내겐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라 정말 그런지 알 수 없었지만, 여러 모로 그럴 것이라는 데 이의는 없었다.

흔히 뉴노멀 시대라고 하는 지금은 조금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이제 결혼과 출산은 인생의 다양한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점점 다양한 방식으로 파트너와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져 통용되던 정상가족의 기존틀은 무너지고 있다. 반려자를 넘어 반려동(식)물도 가족의 울타리 안에 있다. 만약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것이 가족을 꾸리는 일과 비슷하다면 그것 또한 성숙한 어른이 되는 길 아닐까?

30대를 넘어오면서도 나는 독립생활과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지내는 삶이 좋아서 결혼이나 출산에는 1도 관심이 없다. 대신 고양이가 너무 좋은 바람에 집사가 되었다. 반려묘와 지낸지도 어느새 2년째. 처음에 지인의 지인이 키우는 고양이에게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오고, 혼자라 외로울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몇 개월 있다가 한 마리 더 데려 왔다.

둘에게 각각 글이와 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는 나와 함께 하는 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기본적인 위생을 비롯해 영양, 욕구 들을 챙겨주고 있다. 야생이 아닌 인간의 집에서 인간과 함께 사는 이상, 이들에게 나는 전적으로 의지하는 유일한 대상이며, 나는 그들에게 기꺼이 애정을 준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애정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 소중하고 더없는 행복을 내게 선사한다.

두 마리를 돌보는 건 한 마리만 돌볼 때와는 사뭇 다르다. 고양이도 백이면 백, 성향이 달라서 하는 행동도 천차만별이다. 글이와 달이는 서로의 행동을 따라했다. 지금보다 어릴 때 내가 쓰는 컵에 든 물만 마시는 글이를 보고 달이도 따라 마신다든지, 달이가 내 무릎에 올라와 나와 교감하는 걸 본 후로 글이도 내 무릎을 좋아하게 되었다든지 등. 간혹 서로에게 질투도 내비친다. 짜 먹는 간식을 순서대로 줘야 하는데, 글이가 먼저 먹으면 달이가 기다리지 못하고 방해하는 식이다. 장난감으로 놀 때도 재빠른 달이가 놀잇감을 다 차지하면 글이는 삐쳐서 놀지 않는다.

같이 놀자고 다가가 장난치는 건 달이가, 그루밍으로 털을 빗겨주는 건 대개 글이가 한다. 그걸 보면 마치 누나와 남동생 같아서 나는 흐뭇함을 느낀다. 간혹 글이는 달이를 귀찮아하며 뒷발길질을 세차게 한다. 그걸 시작으로 둘은 뒤엉켜 앞발을 주거니 뒷발을 받거니 하다가 씩씩거리기 일쑤다. 치열하게 레슬링을 하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나란히 누워 서로의 털을 빗겨준다. 가끔 달이가 신발을 물어뜯는 걸 발견하면 나는 달이의 목덜미를 잡고 훈육을 시작한다. 그러면 글이가 옆에 와서 “왜옹?”거리며 쳐다본다. 박스를 물어뜯어서 바닥을 어지러뜨리는 글이를 혼낼 때도 마찬가지로 달이가 옆에서 “왜애옹?”거린다.

이런 행동들을 보면 둘이 사람 형제라 해도 이상하지 않다. 세간에서 고양이 키우기를 육묘라고 하는 것도 99% 맞는 말 같다. 그래서 많은 반려인이 자신을 엄마, 아빠라고 칭하는 걸 거다. 나도 글이와 달이가 마치 형제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물론 엄마가 되는 건 내겐 부담스러운 일이라 언니, 누나로 지내지만, 그들을 책임지는 입장이 부모의 것과 다르진 않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며 원하는 걸 발견해주고,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면 훈육하고, 애교부리거나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모습에 행복해하고, 함께 자고, 놀아주며, 먹을 것을 챙겨주고, 화장실도 치워주는 그런 것. 가끔 내 일에 바빠서 충분한 관심을 주지 못하면 미안하고, 내가 아픈 건 참고 넘어가도 그들이 어딘가 아프면 곧장 병원에 가고, 나는 대충 한 끼 때워도 그들에겐 맛있고 좋은 것 먹이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그러니 내게 두 반려묘는 가족과도 진배없다. 비록 진짜 육아가 아닌 추체험일 뿐일지라도 한 대상과 가깝게 지내며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건 인생에서 대단한 일이지 않은가. 삶을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성숙한 어른의 길이라면 나는 조금씩 어른이 되고 있다.

이슬기 ‘일 인분의 삶’ 저자·작가